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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유족이 결혼 선물로 준 ‘굴비’ 32년 새 값 1만 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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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세 사람이 모였다. 왼쪽부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박수근의 장녀 인숙씨,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 [권혁재 기자]

1970년 9월 서울 인사동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현대)이 5주기를 맞은 박수근(1914∼65)의 유작 소품전을 열고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5000원짜리 스케치를 사겠다고 했다. 박명자(72) 갤러리현대 회장은 “이름을 적고 가라고 했다. 실은 돈을 못 낼까 봐 걱정스러웠다. 유홍준이라더라”고 돌아봤다.

 지난 18일 서울 삼청로 두가헌갤러리에 박수근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였다. 본지 창간 50주년, 박수근 50주기 특별전 ‘국민화가 박수근’ 조직위원장을 맡은 유홍준(66) 명지대 석좌교수, 다섯 차례의 박수근 회고전을 연 갤러리현대 박 회장, 그리고 박수근의 장녀 박인숙(71)씨다. 50년 전 51세로 세상을 뜬 박수근보다 나이가 많아진 세 사람이 고인과의 각별한 추억을 풀어냈다.

 “우리 근대미술사에 박수근이라는 화가가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서울대 미학과 4학년 유홍준은 귀가 솔깃했다. 강사 김윤수(후에 국립현대미술관장)가 수업 중 한 얘기였다. 마침 현대화랑에서 박수근 소품전을 열었다. “가정교사 한 달치 월급을 털어 박수근의 풍경화 스케치를 한 점 샀다. 인물화는 다 팔렸고, 유화는 3만원으로 비쌌다. 그림을 사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림은 14년 뒤 그의 손을 떠났다. “84년 고서점 통문관에서 박수근의 삽화 모음집을 접했다. 자료 가치가 높았다. 스케치와 바꾸는 조건으로 손에 넣었다. 풍경화는 그 뒤로 못 봤다. 삽화집은 후에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고 유 교수가 설명했다.

 박명자 회장은 박수근의 화상(畵商)이다. “61년 반도화랑에 취직해 제일 먼저 판 게 박수근의 그림이다. 당시 화랑의 중앙에는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의 수묵화와 박수근의 유화 소품이 걸려 있었다. 각각 6000원·3000원이었다. 3000원이면 일반 샐러리맨 월급. 원근법도 없고 하늘도 파랗지 않은 박수근의 그림을 왜들 3000원을 내고 사갈까, 그 그림이 팔리는 게 나는 신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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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안 팔리면 밀가루 반죽 소금국=박수근의 그림은 한 달에 한 점꼴로 팔렸다. ‘베스트셀러’급이었다. 그러나 박인숙씨의 회고는 이랬다. “아버지 그림이 팔리면 어머니는 쌀을 사셨다. 그날만 쌀밥을 해주셨다. 다른 날은 콩나물죽, 그림이 계속 안 팔리면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은 소금국을 먹었다.” 박수근의 유화는 300여 점으로 추산된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53년 무렵이니 1년에 30점, 한 달에 2∼3점꼴 이다. 박씨는 “아버지는 만날 그림만 그리셨다”고 돌아봤다. 유 교수는 “ 물감이 비싸 안달하면서도 왜 그리 두껍게 그렸을까. 그는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 화가였다. 63년쯤 되면 선이 얇아지고 정면상이 많다. 마애불에 가깝다. 정지된 이미지의 정수다. 한 가지 이미지로 전체를 이야기한다. 그 과정이 있어 박수근의 오늘이 있다”고 평했다.

 박인숙씨가 간직한 아버지에 대한 가장 오랜 기억은 일곱 살 때다. “6·25 때 엄마와 38선을 넘어 서울 창신동 외삼촌댁까지 왔다. 그날 밤 나를 숨막히도록 꼭 껴안고 주무셨다.” 모질지 못하고 다정했던 아버지였다. “키우던 닭을 잡으러 뒤꼍으로 가서는 소식이 없었다. 가보니 칼을 목에 댄다는 게 설대서, 피 흘리며 도망가는 닭을 쫓아다니고 계셨다. 어머니께 고했더니 ‘아유, 그 양반이 그러면 그렇지’ 하셨다”며 미소 지었다.

 ◆"미스 박 시집갈 때 한 점 선물하지”=박 회장과 사연 많았던 그림은 유화 ‘굴비’(1962). “선생님은 ‘미스 박 시집갈 때 내가 그림 한 점 선물하지’ 하셨는데, 내 결혼 한 해 전에 돌아가셨다. 결혼식 날 부인 김복순 여사가 선물이라며 보자기에 싼 꾸러미를 가져왔다. 굴비 두 마리가 그려진 유화였다. 철이 없을 때여서 ‘선생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나 좋아하는 인물화를 주셨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70년 2만5000원에 팔았다. 그런데 피카소도 아니고 그림 값이 해마다 열 배씩은 오르더라. 2002년 5월 박수근이 ‘이달의 문화 인물’로 지정되면서 회고전을 열며 ‘굴비’를 2억5000만원에 되샀다. 32년 만에 1만 배, 기가 막힌 가격이었다. 2년 뒤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 그게 선생님께 내 할 도리다 싶었다.” 박 회장과 유 교수가 각각 기증한 ‘굴비’와 ‘박수근 삽화집’은 강원도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서 8월 30일까지 여는 박수근 작고 50주기 추모 특별전 ‘뿌리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에서 볼 수 있다.

 생전 박수근을 만난 적도 없던 유홍준 석좌교수는 양구 박수근미술관의 개관을 이끌며 7년 가까이 명예관장을 지낸 데 이어, 이번 박수근 50주기전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이만 한 전시를 보려면 50년은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관습에 따르면 고인을 추모하는 전시는 50주기를 계기로 더 이상 10년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무와 두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귀로’ 등 좀처럼 모이기 힘든 대작들을 소장가들이 내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창신동 인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를 여는 것에 대해 “영조 때 겸재, 정조 때 단원·혜원이 있듯 우리에게는 박수근이 있다. 박수근에게는 창작 11년의 산실 창신동이 있다. 우리 시대 문화유산이다. 이곳 보존에 더 많은 이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박수근 50주기 특별전 ‘국민화가 박수근’= 6월 2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 전시 입장료 성인 8000원. 28일 오후 7시에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의 강연과 대담이 마련된다. 02-2153-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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