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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통화정책 목표, 디플레 우려 씻기에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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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3월 12일 이후 경기부양정책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버냉키와 서머스 논쟁이 국내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국내 논쟁의 핵심은 거시경제정책의 유효성이다. 재정정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우리 경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금리와 생산이 영향을 받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이 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미 3년째 세수부족을 겪은 우리 경제는 재정여력이 소진되었으며 재정승수도 작기 때문에 선제적이면서도 과감한 통화정책이 더 유효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재정지출 확장은 얼마나 도움이 될까? 답을 얻으려면 재정지출승수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이것은 재정지출이 한 단위 증가할 때 발생하는 생산의 증가로 계측할 수 있다. 재정지출승수는 측정방식, 대상변수, 추정기간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소규모국가보다는 대규모국가, 개방경제보다는 폐쇄경제, 변동환율제보다는 고정환율제에서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우리나라의 재정지출승수가 1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은 여러 문헌에서 입증되었다.

 재정정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주 크루그먼의 주장을 인용한다. 케인지언의 대표주자인 크루그먼은 대폭적인 재정지출만이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제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자신의 주장이 재정지출승수가 비교적 큰 미국에 국한된 것임을 명백히 했다. 심지어는 여러 나라가 동시에 경기침체로 고통 받고 있는 유로존에서조차 자신의 논리를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기준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은 도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부터 금년 3월까지 3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주범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다. 한국은행은 돈을 푸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디플레이션에 대한 민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명목금리가 하락했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높아졌다. 실제로 작년 7월부터 금년 3월까지 콜금리는 2.49%에서 1.82%로 하락했지만, 실질콜금리는 0.89%에서 1.42%로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민간투자가 살아나기는 어렵다.

 따라서 통화당국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는 데 정책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디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존재하는 한 현금선호현상은 여전할 것이고 경기회복은 요원하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의 책무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과거에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물가안정이었지만, 지금은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기준금리 인하가 실질금리 인하로 이어져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