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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편의점서 다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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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달 30일 오후 5시 도쿄(東京) 의 도라노몬(虎ノ門)에 있는 한 편의점에 우체국 직원이 들어섰다. 그리고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편의점 계산대 밑에 위치한 우체통을 열고는 우편물을 한 보따리 꺼내 들었다.

우체통에는 일반 우편.엽서 외에 묵직한 소포들도 꽤 들어 있다. 물론 우표나 소포용 규격봉투도 구비돼 있다. 소포는 5백엔만 내면 전국 어디든 2~3일 내에 배달된다.

지난 1월부터 우정사업청과 제휴해 전국 7천7백개 점포에서 우편 서비스를 시작한 '로손'편의점. 이 회사는 최근 일본의 한 언론기관이 실시한 '소비자 친근감'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정부 기관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우편 서비스를 편의점으로 끌어 들인 '과감한 발상' 덕분에 이 회사의 매출은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편의점들이 변신하고 있다. 간단한 음식료와 생활용품을 파는 정도로는 고객을 유인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로손 본사의 홍보담당자인 하세가와 이즈미(長谷川泉)는 "곳곳에 대형 수퍼와 할인점이 들어서고 있어 보다 차별화된 서비스로 이들 업체와 승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며 "편의점의 최대 장점인 근접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도쿄 신주쿠(新宿)에 있는 한 편의점의 서비스 목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은행 ATM기 현금 인출, 국채 판매, 디지털 카메라 현상, 신용카드 결제, 국내외 호텔 및 여행상품 예약, 초고속통신망 설치 신청, 전기료 등 공공요금 납부, 세탁물 접수, 신문 정기구독 신청, 비디오 및 DVD판매, 국내외 항공권 구입, 각종 공연표 구입….'

한마디로 금융회사와 사진관, 여행사 등의 온갖 서비스가 모여 있는 집합체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의 변신은 다른 업종의 행태까지 변하게 만들고 있다.

편의점들이 2001년 10월부터 도입한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 정부가 '획기적인 규제완화 조치'라고 생색을 낼 만큼, 이 조치로 일반 시민들은 굳이 은행에 가지 않고도 바로 옆 편의점의 ATM에서 입출금을 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24시간 연중무휴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은행에서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아예 자체 ATM코너를 폐쇄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또 별도의 점포 없이 주로 편의점 ATM을 이용한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이른바 '편의점 은행'도 생겨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도서관에 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특정 도서의 대출 신청을 하면 약 5일 후에 지정한 편의점에서 그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정부가 도맡아 하던 업무들도 편의점으로 넘어오고 있다.

우리로 따지면 주민등록등본을 전화로 구청에 주문한 뒤 지정한 점포에서 받을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료도 편의점에서 낼 수 있게 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밖에 편의점들은 점포마다 정보단말기를 설치해 자동차운전학원 수강, 각종 학교 원서, 통신교육 등의 신청까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다양한 서비스 외에도 편의점들은 고유업무인 상품판매의 신장을 위해 경쟁업체와의 상품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도쿄 아카사카(赤坂) '세븐 일레븐' 편의점의 한 관계자는 "바로 옆에 호텔이 있어 팬티.양말.와이셔츠를 다른 곳보다 여러 종류 구비해 놓는다"며 "또 전날 밤 기상예보를 보고 다음날 날씨가 더워질 것 같으면 '냉 소바'같은 것을 많이 구해 놓는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사진설명>
도쿄 도라노몬(虎ノ門)에 있는 한 편의점에 우체통이 설치돼 있다. 일부러 출입구 쪽이 아니라 계산대 쪽에 배치해 고객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편의점의 전략이 엿보인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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