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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집」과「사는 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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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주도의 획일성이 어떤 문제를 낳고 있는지는 농촌주택 개량사업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경제기획원이 전국 14만2천여동의 농촌 개량주택을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주택의 획일화로 전통적인 아름다움이나 농촌사회의 대가족제에 따른 생활양식을 고려치않는것은 물론이고 방수·방온등 여러면에서 미흡함이 드러났다.
또 이 사업이 전시효과 위주의「보는 집」만 노렸기 때문에 고속도로나 철도변에만 주로 보급되었을 뿐 정작 필요한 지역에서는 보급이 느린 결과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생활에서 의·식·주가 필수요건인데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주거문제가 가장 주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주택의 개량이 의식의 변화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했던 농촌주택의 현대화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으며 그런대로 실효를 거뒀다.
주택개량으로 농촌지역 주민들의 정서생활이 한층 깊어졌고 특히 위생관념이 한결 나아진것은 부인할수없다.
종전에는 맨발로 논밭에서 일하다가 곧바로 안방에 들어가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새 주택이 보급되어 입식부엌에 깨끗한 화장실이 생기고 부터는 청결과 위생에 한층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른바 문화생활로 의식구조가 차츰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농촌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시권마을의 강제성을 띤 무리한 사업의 추진은 갖가지 부작용을 가져왔다.
한마디로「사는 집」의 기능보다는「보는 집」의 미관만을 중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국은 이 사업을 본격화한 78년에 설계모형도 5가지 정도밖에 마련하지 않고 이 범위에서 선택토록 했으며 지금은 39종으로 늘렸다고 하나 도시형 주택구조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택모형이나 지붕의 모양·색깔만해도 마을이 들어설 지형과 자연경관에 어울리게 설계되어야하고 지역주민들의 참여아래 설계되어야 할것이다.
또 방온이 거의 무시되다 시피한 약점과 굿간과 외양간의 공간처리 문제도 보완 해야한다.
외양만해도 지나치게 사치한 모양은 피하도록 함이 마땅하다. 시골마을의 특수성으로 보아 옆집이 2층집을 지으면 가족수나 경제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뒤따라 짓는 경향이 짙다.
이때문에 농촌주택의 사치성이 문제가 되고 빚을지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또 자재의 표준규격품 보급이 제대로 되지않아 공비가 많이 먹히는점을 감안, 규격자재를 대량보급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것이다.
당국에 의하면 현재 27만3천동의 개량주택이 들어섰고 88년까지는 59만동까지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농촌 주택 총2백92만동의 5분의1밖에 개량이 안되는 셈이다.
앞으로는 가시지역뿐 아니라 산간마을에 까지 보다 독창적이고 다양한 모양의「사는 집」이 들어서도록 당국의 과감한 시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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