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항로변경 혐의 무죄 … 143일 만의 귀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조 전 부사장이 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서부지검이 구속한 지 143일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김상환)는 22일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재판의 최대 쟁점이었던 항로변경 혐의와 관련해 “항공기의 계류장 내에서 지상 이동한 것을 항공보안법상 ‘항로의 변경’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 내에서 박창진 사무장과 승무원 김도희씨 등에게 폭력을 행사해 안전 운항을 저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의 징역 1년 실형에서 감형된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5일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인 대한항공 여객기 기내에서 서비스 응대 문제를 지적하던 중 박 사무장에게 고성을 지르며 내리라고 지시하고 이동 중인 항공기를 돌리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 2심 재판의 쟁점은 조 전 부사장의 행위가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은 “항공보안법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하면 운항 중인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 착륙 후에 지상에서 이동하는 상태까지 모두 항로에 포함된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항로는 항공로(航空路)와 동일한 의미이거나 비행을 예정한 공로(空路)의 의미에 가깝다. 항공기를 뒤로 물러나게 해 탑승 게이트로 돌린 행위(램프리턴)와 같이 계류장 내에서 이동은 배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계류장 내에서의 항공기 이동이 자주 발생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지상에서의 이동까지 항로에 포함해 처벌하는 것은 지나친 확장·유추해석으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행위는 형법적 평가에 앞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심이 없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5개월간 구금돼 재판을 받는 동안 자신의 행위와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엄중한 사회적 비난과 낙인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할 처지인 상황에서 새 삶을 살아갈 한 차례의 기회마저 외면할 정도의 범죄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집행유예 선고 직후 조 전 부사장은 곧바로 석방됐다. 수의를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법정 밖으로 나온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대기 중이던 차량에 탑승했다.

 이날 재판부는 국토교통부 조사 과정에서 박창진 사무장 등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혐의(강요·증거인멸 등)로 기소된 여모(58) 전 대한항공 상무에 대해서도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여 상무에게 국토부 조사 결과와 계획을 알려준 혐의(공무상비밀누설)로 기소된 김모(55) 조사관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