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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숟가락은 왜 ‘ㄷ’ 받침을 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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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번지점프를 하다’란 영화가 주는 여운에 한동안 설레어 잠 못 이룬 적이 있었다.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기억나는 장면이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여자 주인공 태희가 남자 주인공 인우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젓가락은 ‘ㅅ’ 받침이잖아. 근데 숟가락은 왜 ‘ㄷ’ 받침인 거야?” 젓가락과 숟가락 모두 발음은 별 차이가 없는데 왜 숟가락만 ‘ㄷ’ 받침이 붙느냐는 이야기였다. 국문학과 학생인 인우는 고민 끝에 젓가락을 들고 “젓가락은 이렇게 집어먹으니까 ‘ㅅ’ 받침이고, 숟가락은 이렇게 퍼먹으니까 ‘ㄷ’ 받침인 거야. 봐, ‘ㄷ’ 자처럼 생겼잖아”라고 대답한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줬던 장면이지만 그 내용은 정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숟가락엔 왜 ‘ㄷ’ 받침이 붙었을까.

 젓가락에 ‘ㅅ’ 받침이 붙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젓가락은 젓가락을 의미하는 한자 ‘저(著)’와 가늘고 길게 토막이 난 물건을 세는 단위인 ‘가락’을 합해 만든 합성어다. 여기에 사이시옷이 들어가 ‘젓가락’이 된 것이다. ‘차+잔’에 사이시옷이 들어가 ‘찻잔’, ‘비+자루’에 역시 사이시옷이 끼어 ‘빗자루’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두 낱말이 합쳐져 생긴 합성어의 경우 사이시옷이 붙는 일이 많기 때문에 ‘숟가락’도 ‘숫가락’이 돼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 제29항을 보면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바느질+고리’는 ‘반짇고리’, ‘사흘+날’은 ‘사흗날’, ‘이틀+날’은 ‘이튿날’, ‘삼질+날’은 ‘삼짇날’, ‘풀+소’는 ‘푿소’, ‘설+달’은 ‘섣달’이 된다.

 ‘숟가락’은 밥 등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떠 그 분량을 세는 단위인 ‘술’에 ‘가락’이 붙어 이루어진 단어다. 숟가락 역시 끝소리가 ‘ㄹ’인 말(술)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숫가락’이 아닌 ‘숟가락’으로 쓰게 된 것이다.

김현정 기자 kim.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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