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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구설’과 ‘구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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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승승장구하던 강력계 형사 최 반장이 살인사건에 연루되며 범죄 사실을 은폐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악의 연대기’. 특진을 앞둔 최 반장에게 서장은 이런 조언을 한다.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리지 말고 몸조심해!” 서장의 바람과는 달리 최고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그는 사건을 덮으려 고군분투하지만 더 큰 위기에 놓이게 된다.

 영화·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리지 말고…”는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쓸데없는 구설에 휘말리지 말고…”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구설수(口舌數)’는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를 뜻한다.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과 저절로 오고 가고 한다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이다. ‘구설수에 휘말리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하거나 타인으로부터 비방하는 얘기를 듣게 될 운수에 휘말리다는 말이 되어 어색하다. 좋지 않게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에는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가리키는 단어 ‘구설(口舌)’이 오는 게 적절하다.

 ‘구설수에 오르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 영화배우가 만취 상태로 시상식 무대에 서서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의 경우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고 하는 게 바르다. 시비나 험담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구설수’는 토정비결 등 운세를 풀이한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이달엔 구설수가 있으니 매사에 언행을 조심하라” “괴상한 디자인의 옷이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이 나오는 꿈은 물질적 손해를 보거나 구설수가 드는 예지몽이다”와 같이 쓰인다.

 ‘구설’과 ‘구설수’는 다르다. ‘구설’은 좋지 않은 말이고 ‘구설수’는 그런 말을 들을 운수다. ‘구설수에 휘말리다’ ‘구설수에 오르다’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다 보니 일부 사전에서 예제로 싣기도 했으나 ‘구설에 휘말리다’ ‘구설에 오르다’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구설수’는 있다거나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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