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철 덩어리로 남게된 신포 경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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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런 상황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 핵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는 미국의 반발에 한.일이 동조한 데 따른 것이다. 새로운 북핵 해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포 경수로 사업마저 무산됨으로써 향후 한반도 위기지수가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위폐 문제에 따른 북.미 간 갈등으로 6자회담은 개최조차 불투명해 우려가 더욱 크다.

경수로 사업은 종료됐으나 이에 따른 또 다른 과제가 우리 앞에 남겨져 있다. 우선 2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청산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현재 미.일은 청산 비용을 분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우리 정부는 균분하자는 방침이어서 갈등이 예상된다. 우리는 경수로 사업에 이미 1조3000억원을 허공에 날렸다. 거기에 더해 청산 비용마저 대부분 우리가 맡게 된다면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정부가 감당할 몫이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투입된 비용이 헛되지 않도록 미.일과 긴밀하게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향후에 신포 경수로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미리미리 치밀하게 강구해야 한다. 미국이 지금은 신포 경수로를 반대하고 있지만, 6자회담이 타결될 경우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신포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이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에서 북한이 현 신포 경수로 시설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주지시켜야 한다. 2003년 12월부터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에 원자로가 들어설 돔형 콘크리트 시설은 이미 상당부분 녹슬었다고 한다. 대책 마련이 급하다. 필요하다면 장비 지원도 하되 보존의 당위성에 대해선 분명한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