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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관이 설명한 '유시민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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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린우리당 유재건 신임 의장(가운데), 정세균 전 의장(오른쪽)등이 8일 오후 '1·2개각'에 따른 당·청 갈등 해소를 위한 중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조용철 기자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 유시민 의원의 입각은 '차세대 지도자 키우기'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비서관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대변인과 부속실장을 지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의 글은 대통령의 속내를 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글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2004년 7월 유 의원뿐 아니라 정세균(산업자원부 장관 후보자).천정배(법무부 장관) 의원도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꼽았다고 한다. 1년6개월 전이다. 그러면서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지도자감으로 주목했던 사람들은 그 후 모두 당에서 원내대표나 상임중앙위원 등에 선출됐다"고 지적했다. '자격'이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당의 반발로 취소된 5일 청와대 만찬에서 대통령이 하려던 말을 대신 전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글은 당의 차기 경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선 엇갈린 반응들이 쏟아졌다. 유 의원이 이끄는 참여정치연구회 소속의 이광철 의원은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환영했다. 유 의원 지지세력은 "정동영.김근태 전 장관에 이어 명실공히 제3의 대선후보로 자리매김됐다"며 고무된 분위기다. 천정배 장관과 정세균 장관 후보자에 대한 시선 역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정동영-김근태의 2파전에서 혼전 양상으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노 대통령의 구상에는 몇 가지 정치적 목표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우선 '지방선거 이후의 대책'성격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선거전망은 어둡다. 당내에선 정-김 두 명 주자 가운데 전당대회에서 진 한 명이 먼저 탈락하고, 당의장이 된 사람은 지방선거 패배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있다. 이러면 당의 인적자원이 고갈된다. 노 대통령이 별도의 예비주자군을 확보해 둘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정-김 두 주자의 지지율이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 장외의 고건 전 총리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의식했을 것이다. 정-김 두 명의 지지율 상승만 기다리다 실패하면 당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을 수 있다.

레임덕 방지 차원의 '경쟁구도 복잡하게 만들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이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를 넓히자는 계산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내 최대 세력인 정동영.김근태계는 각각 경계심과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 전 장관과 가까운 서울지역 재선 의원은 "지금 국면에서 당.청 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차세대든, 차차세대든 국민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지 인위적으로 결정할 사항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김 전 장관 측 의원은 "대통령이 차기는 물론 차차기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력구도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냐"며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로서 부적절한 글"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욱.전진배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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