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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주가 1400시대' 증권선물거래소 이영탁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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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올해는 선진국 증시 수준의 투자상품들을 적극 개발해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신인섭 기자]

주가 1400포인트. 이게 국내 증시에서 얼마만한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1989년 처음 주가가 1000을 돌파했을 때 전국은 주식 광풍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세 차례, 주가는 1000 문턱을 넘기 무섭게 곤두박질했다. 그 뒤 16년간 1000포인트는 '마의 벽'으로 불렸다. 그 마의 벽이 지난해 깨졌다. 아니, 단순히 깨졌다는 말로는 곤란할 정도로 주가는 급상승했다. 언제 다시 주저앉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침없었다.

급등한 주가는 전국을 펀드 열풍에 몰아넣었다. 펀드 열풍은 장기.간접투자가 국내 증시에 뿌리내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널뛰기' 증시를 원망하며 떠났던 투자자들도 다시 돌아왔다. 2005년 1월 3일 893.71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12월 29일 1379.37로 한 해를 마감했다. 증권가에선 이런 기록들을 남긴 2005년을 '한국 증시의 재평가 원년'으로 부른다. 2005년은 통합 증권선물거래소가 출범하고, 그 사령탑에 이영탁 이사장이 취임한 해이기도 했다.

-코스피지수가 1400을 돌파했다. 증시 상승세가 무서워 걱정스러울 정도다.

"사실이다. 지난해 주가는 세계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할 만큼 많이 올랐다. 과거 같으면 주가가 오를 때마다 온갖 지저분한 일이 생겨났다. 내부자 거래며 주가 조작이며 시장을 어지럽히는 못된 일들이 벌어졌고, 이를 감시하는 증권거래소 직원들의 손발이 바빠졌다. 그러나 지금은 주가가 크게 올랐는데도 증시 상황은 차분하다. 시장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얘기다. 시장이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가가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올해도 더 오른다는 것인가.

"(이 자리가) 주가가 딱 잘라 얼마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상승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올해 실물경제가 살아나면서 주가도 더 좋아질 것이다."

-흔히 주가는 실물경제에 선행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주가가 이미 올해 좋아질 실물경제를 반영했다는 시각도 있다. 말하자면 지금이 '상투'란 얘기인데….

"실물경제의 바닥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는) 지난해 3분기가 저점이라고 본다. 주가가 실물경제에 선행한다지만 경제가 계속 좋아지면 주가 상승도 오래 이어질 것이다. 또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아직 주가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경제 실력 외에 정치나 사회 문제 때문에 한국 주식이 상대적으로 덜 평가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탓이 크다. 지난해 기업 지배구조가 좋아지고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많이 해소됐지만 아직도 제 평가를 못 받고 있다. 그런 만큼 올해도 주가가 제 가치를 찾아가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주가가 어느 정도 돼야 저평가가 해소됐다고 볼 수 있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이 한국 증시 평균은 10.5다. PER이 낮을수록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 대만은 14.2, 일본은 29.65다. 같은 조건으로 한국과 일본에 동시 상장했다면 일본에선 두 배 이상 주가가 높다는 의미다.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

"거래소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것이다. 특히 시장신뢰지수를 개발하고 곧 공개할 것이다. 한국 증시와 미국 증시, 일본 증시를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고 순위를 따져볼 수 있는 지표다. 57개의 평가항목을 가중치를 줘서 나라별로 성적을 매기는 방식이다. 우리 증시는 대략 15위 안팎이 될 것이다. 2004년을 기준으로 첫 지수를 산출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공표되는 것으로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스위스에서 국가경쟁력 지수를 발표하면 모든 나라가 신경 쓴다. 우리가 처음 만드는 지수지만 증권시장의 경쟁력, 신뢰도를 측정해 발표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신경 쓰게 될 것이다. 국가 간 비교도 해 우리 시장 신뢰도가 선진시장보다 낮다면 뭐가 부족한지 규명해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증시 과열 우려가 있다.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고령화와 저금리가 대세다. 국민의 여유자금 운용도 은행 위주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유가증권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문제는 증권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안 좋게 보는 시각이 남아 있다. 투자 전에 건전 투자가 어떤 것인지 자세 인식을 올바르게 하는 게 무척 중요한 시기다. 장기적으로 큰 욕심을 버리고 우량주를 골라 정석 투자하는 것 외에 주식투자에 왕도는 없다. 기본 자세가 돼야 응용 동작도 가능한 법이다."

-외국 기업 상장을 추진 중인데.

"상반기 중 첫 상장이 이뤄질 예정이다. 우리 시장에 아직 외국 기업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엔 32개의 외국 기업이 있다. 우리도 3년 내 30개 유치가 목표다. 대상은 주로 중국 기업이다. 중국엔 상장 대기 중인 기업이 3000개나 된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증시로 많이 가는데 이 물량을 우리가 소화해 내자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에게는 중국 기업에 직접 투자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중국 기업 입장에선 물량 부담 해소에 도움이 되는 '윈-윈' 게임이다."

-중국 기업이 한국을 택하게 할 만한 유인책이 있나.

"중국은 정부와 공기업이 소유한 비유통주가 큰 부담이다. 한꺼번에 쏟아냈다간 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 증시는 우량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국유자산관리위원회에 가서 비유통주 처리를 위해 한국 시장을 활용해 보라고 제안했다. 필요하면 국유기업들을 상대로 대규모 투자설명회도 하겠다고 했다. 이게 성사되면 국내 투자자들은 우리 주식을 사고팔 듯 중국 기업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된다."

-거래소 상장이 증권가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세계 15대 거래소 중 뉴욕.도쿄 등을 빼면 대부분 상장했다. 우리가 되레 늦은 편이다. 거래소 상장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 기관투자가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기관투자가들이 안정적 수익을 올리면 그 과실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 물량이 달려 우량주 기근 현상을 빚고 있는 증시 가뭄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래소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상장을 통해 체력과 실력을 더 키워 놓아야 한다. 유럽에선 이미 거래소의 인수합병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금융 노하우에서 본다면 중국은 아직 뒤떨어져 있고 일본도 실물경제 실력만큼은 안 된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반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권 최고의 거래소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반대하는 쪽에선 상장 차익 환원과 공공성 훼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용역 결과 상장 차익 중 1200억~1800억원 정도를 공익기금으로 내놓는 방안이 적절한 것으로 나왔다. 정부 소유였던 한국전력이나 담배인삼공사 등은 상장 때 사회환원을 문제 삼지 않았었다. 사실 거래소도 법적으로는 상장 차익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회 정서를 감안해 적정선에서 규모가 정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공공성 훼손 운운은 말이 안 된다. 거래소 본연의 업이 시장 공정 관리다. 그걸 잘못하면 당연히 시장이 망가지고 거래소 주가도 떨어진다. 상장과 관련해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거래소 임원들은 스톡옵션도 일절 받지 않기로 이미 결의했다."

-통합 거래소가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한 해를 돌아보면.

"연초에 3개년 계획을 세워 계획대로 마무리했다. 올해는 특히 상품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주가가 오르고 손님들이 몰리는 데 팔 상품이 없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시카고 상품거래소에는 약 120개의 상품이 있는데 우리는 불과 10여 개뿐이다."

-어떤 상품들을 준비 중인가.

"지난해엔 주식워런트증권(ELW)이 성공작이었다. 12월부터 거래했는데 한 달여 만에 34개 종목에서 72개 종목으로 늘었고, 하루 평균 거래대금도 210억원에서 367억원으로 커졌다. 이런 상품들을 올해 많이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2월 초 거래소와 증권연구원, 학계 등으로 팀을 구성해 미국과 유럽에 대규모 조사단을 보낼 계획이다."

이정재 기자 <jjye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 이영탁 이사장은 …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일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통한다. 청와대 근무시절엔 아예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일을 챙길 정도였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교육부 차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친 정통 관료다. KTB네트워크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내며 경영능력도 키웠다. 어려운 주변 이웃에 대한 관심도 많아 2000년엔 사회복지법인인 '아이들과 미래'의 부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독학으로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딸 만큼 학구적이다. 글솜씨도 일품이다. 청와대 경제비서관 시절에 쓴 '시민을 위한 경제이야기'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엔 '시민을 위한 주식투자이야기'를 펴냈다.

◆주요 경력 ▶1947년 경북 영주 출생▶69년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69년 행정고시 제7회 합격▶86년 경제기획원 종합기획과장▶90년 재무부 증권국장▶93년 대통령비서실 재경비서관▶95년 교육부 차관▶97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99년 KTB네트워크 대표이사 회장▶2003년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2005년 증권선물거래소 초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