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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총리 측 "우린 장외주" 이명박 시장 측 "우린 실적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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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건(얼굴(左))과 이명박(右). 새해 초 각종 여론조사기관들의 차기 대통령 예비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조사에서 박빙의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이다. 양 진영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상대 진영의 동향과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면 1=1일 오전 11시, 상도동 김영삼(YS) 전 대통령 자택. YS정부 시절 마지막 각료를 지낸 '문경회' 멤버 10여 명이 신년 인사차 방문했다. 당시 내각을 이끌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주도하는 모임이다. YS와 둥그렇게 모여 앉으니 당시 국무회의를 연상케 했다. 서로 덕담을 나누다 언론사들의 차기 대통령 예비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가 화제에 올랐다. YS가 "고 총리,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던데…. 잘돼 가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고 전 총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직 국무회의에 보고할 정도는 못됩니다"고 받았다.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장면 2=비슷한 시각,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엔 손님이 넘쳐났다. 이춘식 정무특보 등 이명박 시장의 핵심 측근들도 자리를 같이했다. 이 시장은 참모들에게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국민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 좀 더 국민 속으로 다가가고 파고들어야 한다. (여론 지지가 높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 되며 많은 사람이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주변에 대한 당부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다짐 같았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 장외주 vs 실적주=고 전 총리 측은 '장외(場外)주'에 비유한다. 고 전 총리는 아직 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이란 주장이다. 한 측근은 "고 전 총리가 (대선에) 안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게 사실 아니냐.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고 부동층과 숨은 지지표가 나오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와 가까운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고 전 총리에 대한 지지는 자발적이어서 강인하다. 최근 지지율이 조금 떨어졌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 시장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지지표가 압도적으로 이 시장을 떠받치고 있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 급락으로 반사이익까지 얻고 있다. 이 시장에 대한 지지는 거의 다 노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시장 측은 '실적주'라고 강조한다. 청계천 복원, 버스중앙차로제 같은 눈에 띄는 성과를 바탕으로 개미군단이 한 표 한 표씩 몰아준 결과라는 것이다. 이 시장은 "기존 정치인과 달리 말만 앞세우기보다 약속한 것을 실현하는 결과를 국민이 봤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다른 정치인들과 나는 접근 방식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참모들에게도 "여당은 권력.언론 매체 등을 활용해 무명인을 갑자기 스타로 띄우는 게 가능하겠지만 야당 정치인은 국민 마음속에 실력으로 뚜렷하게 각인되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핵심 참모는 "이 시장의 지지도는 완만하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면 고 전 총리는 꺾임새를 보이고 있다"면서 "고 전 총리가 이렇다 할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상장 적기는 언제? vs 청계천 후속타는? =양측 다 고민이 있다. 고 전 총리의 경우, 언제 어떤 간판으로 경쟁에 뛰어드느냐로 고심 중이다. 그는 정치권에 지분이 없다. 이 때문에 '상장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특히 주시하는 대목은 1.2 개각 파문과 열린우리당의 동요다. 변화의 폭이 크면 클수록 고 전 총리가 유리해진다는 판단이다. 이 시장은 퇴임(6월 말) 이후가 걱정이다. 주변에선 청계천 효과를 이어갈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부심하고 있다. 한 참모는 "너무 밋밋하면 청계천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고, 너무 엄청난 걸 내놓으면 돈키호테라는 시비가 불거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청계천 대박'이 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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