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인상…실익 없다〃판단-내년 실시로 기운 「총선」-당·정 협의의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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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과 행정부간에 시기결정을 싸고 이견을 보여왔던 12대 총선거는 결국 민정당이 의도했던 대로 내년 실시 쪽으로 결말이 나게됐다.
24일 열린 당정간의 고위협의에서 민정당 측은 구체적인 총선 일자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 방향만은 당이 주장해 온대로 상식에 따른 명분을 정부측에 납득시키는데 성공한 것 같다.
선거는 당의 주도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의지를 관철한 셈이다.
다만 민정당 측이 행정부 측과 이같은 조정회의를 필요로 했던 것은 내무부와 일부 경제부처 및 재계 등 다른 분야에서의 연내 총선 주장이 만만치 않았고 따라서 선거를 원활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반대론을 이유있는 명분으로 설득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주관부처인 내무부와 경제기획원·재무부 등 경제부처의 연내총선 주장도 그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선거가 내년 2, 3월께 실시되면 선거기간이 늘어나고 연말연시와 두 차례 명절이 겹쳐 자연스럽게 금권 타락선거가 되기 쉬워 이로 인한 인플레 등이 모처럼 이룩한 경제안정기조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또 선거기간의 장기화로 치안유지 등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여신규제 등 긴축운영으로 시달려온 경제계측에서도 모든 정치일정은 올해로 끝냄으로써 내년에는 제6차 경제개발계획수립의 본격적인 작업에 나서는 등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내무부 측은 특히 재야의 동향과 함께 학원사태 등 정국 혼란요인이 가중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총선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지시로 더한층 강력하게 제기됐었다.
그러나 민정당 측은 선거를 금년에 실시할 경우 이것은 국민들에게 기습이라는 인상을 주고 선거시기를 여당에 유리하게 결정했다는 비난을 받는 다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사실 지금까지 선거는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에 가까운 시기로 선택하는 것이 통례였었다. 제헌국회에서 제정된 선거법은 임기만료 20일 이내에 행한다는 규정만 있었고 그 이후는「임기만료 60일로부터 20일전」으로 못박음으로써 선거시기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72년 유신헌법이후「임기만료 6개월전」으로 바뀌었고 10대 선거때는 당시 신민당 측의 요구에 따른 여야합의라는 구실로 임기만료 3개월전인 78년12월12일에 실시하는 유일한 전례를 남겼다.
그러나 이것은 변칙적인 것으로 간주됐었고 선거결과도 여당의 1·1% 패배로 나타났었다.
민정당 측도 이점을 감안한 것 같다.
연내 총선의 경우 국민들은 여당이 기습선거를 했다고 간주하겠지만 민정당 측으로는 기습이라는 명분의 상실과 바꿀 선거상의 실익은 전혀 없다.
오히려 변칙이 아니라는 구구한「설명」을 해야하고 그것은 거꾸로 야당측에 공격거리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민정당 측은 선거기간의 장기화로 당이나 국회의원 후보자신은 물론 정부측도 고생스럽다는 것은 시인하지만 당의 신뢰성 상실이라는 더 큰 손실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내년 총선 주장의 가장 주된 이유였다.
내년 선거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타락선거 가능성 등은 공명선거 캠페인 등으로 억제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함으로써 11대 국회의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였다. 연내 선거로 국회가 선거를 앞둔 선전장이 되면 여당에 불리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 동안 주장해온 대화와 화합의 정치는 허울만 남게될 우려가 있다. 재야의 동향에 따른 우려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 문제는 그 나름으로 대처해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선거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면 이에 따라 정치일정도 순리적으로 조정 돼야한다.
민정당 측은 선거와 3차 해금 사이의 기간을 최소한 3개월은 돼야 한다고 보고있다.
그렇지 못하면 민정당이 정정당당하게 선거를 했다는 명분이 살지 못하고 총선 후에도 수습하기 힘든 정치적 공격거리를 남긴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 서두르는 기색도 없지 않았던 당내의 공천작업도 완만하게 진행될 것 같다.
위원장 교체에 따른 반발과 잡음으로 10월초 2단계 교체 작업 후 나머지 문제 있는 지구 등은 일괄공천 할 것을 검토했던 민정당으로서는 순탄한 조직의 승계방안을 다시 모색해 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남은 문제는 구체적인 선거시기다. 민정당 측도 선거를 구정 전으로 하느냐, 후로 하느냐로 상당히 고심해온 것이 사실이다. 민정당의 명분론대로 하자면 3월이어야겠지만 타락가능성에 대비해 2월 중순께 실시하자는 의견도 상당히 유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선거시기에 관한 논의가 일단락 됐다 하더라도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는 것 같다. 지난해 9월부터 나온 조기 총선 구상으로 선거의 조기과열이 촉발됐었고 그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여당측 내부에는 연내 선거론이 강력하게 나돌았다. 당 지도부도 선거시기 결정을 여당의 프리미엄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시기 결정을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고려했던 흔적이 있다.
이런 것들은 선거실시 가능기간을 1백60일이나 되도록 길게 잡아놓은 선거법에 이유가 있다. 민정당이 이제 통상적인 원칙에 따라 내년선거를 관철했다면 그 원칙을 선거법 개정에 반영, 선거실시 가능 기간을 대폭 줄이거나 최소한 임기만료 직전실시를 움직일 수 없는 불문율로 확립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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