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이발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여름은 어지간히 무더워 이젠 좀 끝났으면 하면서 지겹게 보냈다. 그토록 무더웠던 여름 탓인지 오는 가을이 유달리 반감기만 하다.
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기온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이것저것 궁리 끝에 문득 아빠와 아들녀석의 머리가 많이 길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 머리를 잘라줘야 겠구나』
결혼후 7년동안 내내 그이의 전속 이발사였던 내가 또 아들이 태어난후 다시금 아들의 머리까지 (때로는 헤어스타일도 변경시켜가며)맡아온 이발실력은 꽤 괜찮은 편이다.
먼저 아들녀석을 보자기로 목을 감싼후 머리를 반듯하게 빗고 가위질을 시작하니 자꾸만 투정을 부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옆에서 아빠가 달랬지만 심통이 대단하다. 가까스로 예쁘다고 달래며 이발을 끝내고 나니 동그스름한 아들의 얼굴이 참으로 귀엽다. 이윽고 아빠의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나니 언제나처럼 그 큰 코가 돋보여서 웃음이 나온다.
『또 내 머리에 스트레스 해소할 생각은 아예 말라구.』
그이는 내심 걱정어린 한마디를 던졌지만 그 말에는 의미가 깊이 담겨져 있다 잘 하다가도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면 난 어김없이 그이의 머리를 볼품 없는 단발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처음엔 조심조심 커트해 나가다가 점점 짧게 올라가는 내 실력을 그이는 항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아빠가 이발을 다 마치고 나니 아들 녀석이 쪼르르 달려가 손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방긋이 웃다가 이내 아빠에게 거울을 내민다.
부자의 환한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니 흐뭇한 마음이 가슴 가득히 밀린다. 그 환한 얼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을은 더욱 상쾌한 느낌을 전해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