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 어떻게 편성됐나 「통합재정수지」로 방향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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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정책 중에서 개혁의지가 아직도 가장 왕성한 곳을 꼽는다면 그것은 「예산」쪽일 것이다.
작년에는 동결예산을 밀어붙이더니 올해는 무려 8천7백91억원의 흑자예산을 내놓았다.
한술 더 떠 이젠 흑자예산이 아니라는 주장이고 따라서 혹자니, 적자니 하는 예산편성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는 것이다. 예산회계법까지 가까운 시일 안에 고칠 작정이다.
종래 대로 일반회계기준으로 따지면 야 흑자예산임이 틀림없으나 나라 재정의 수입·지출을 총괄하는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보면 「그래도 적자」라는 것이 예산 당국의 설명이다.
요컨대 예산편성의 기준을 종래의 일반회계중심에서 통합재정수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IMF(국제통화기금)로 부터 그래야 한다는 충고를 들어왔었으나 엄두를 못 내던 일이다.
방만한 재정운용도 이 정도면 자리를 잡았고 일반 회계도 혹자를 내게됐으니 이젠 정말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나라살림을 꾸러 가보자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의 혹자예산편성은 금년예산의 동결에 이어 제2의 재정개혁작업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할 경우 예컨대 추곡수매를 하면서 생기는 적자나 철도사업에서 생기는 적자 등도 모두 세금거둔 돈으로 직접 메워주게 된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찍거나 변칙적으로 뒷돈을 대주느니 어차피 들어갈 돈이면 아예 같은 회계장부에 올려 함께 따지겠다는 것이다.
흑자재원으로 책정한 8천7백91억원이라는 숫자도 양곡기금(4천5백억원)과 비료계정(4백62억원), 자금관리특별회계 (3천8백29억원)등에서 내년 중에 새로 생겨날 적자의 합계금액을 역산해 낸 것이다.
따라서 이들 항목에서 적자가 생겨나는 한 일반회계의 흑자편성은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다.
문제가 없진 않다. 특별회계와 각종 기금에서 생겨나는 적자가 과연 『공공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고 최선의 경영을 했는데도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적자였느냐』하는 점을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 철도적자처럼 부실경영의 전형으로 꼽히는 데다 무작정 세금거둔 돈으로 틀어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지하철 빚을 갚아주기 위해 지원하는 1천2백72억원도 마찬가지다. 뒷감당은 생각 않고 지방재정에서 잔뜩 일을 벌여 놓고 지금 와서 『요금인상이냐 재정지원이냐』라는 식의 택일 강요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적자를 내고있는 특별회계와 기금 스스로가 근본적인 체질 개선책을 함께 마련하지 못하는 한 통합재정수지로의 전환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세금부담만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재정개혁의 진정한 의미는 이 같은 예산편성의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내용의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전체 예산 중에 경직성예산(방위비 및 각종법정교부금)의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형편에서는 어떠한 진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에도 세출예산을 9·7% 늘렸으나 경직성예산을 뺀 나머지 부문의 몫은 1·7%증가에 불과했다. 따라서 예산증가율을 10% 미만수준으로 가져가는 한 사실상 예산운용은 항상 동결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셈이다.
예산의 3분의1수준을 차지하고있는 방위비 문제는 이번에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으나 책정기준인 GNP규모가 기준연도 개편으로 일단 커진 이상 계속 문젯거리로 이월 될 수밖에 없다.
법률로 일정한 비율을 떼어 주게 되어있는 지방 및 교육교부금도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끌어갈지 짚고 넘어갈 문제다.
특히 지방재정교부금의 경우 내년예산안에서도 전체 세출 예산증가율의 2배에 가까운17·6%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지방재정은 돈이 모자라 수시로 기채 사업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해결책은 예산편성의 기술적인 차원을 넘어 지자제 실시 등의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것이 예산당국자의 지적이다.
논란의 초점이었던 공무원 처우개선문제는 시급성만 잔뜩 강조된 채 또다시 주저 않고 말았다. 정책의 경직성에 공무원 스스로가 묶여버린 셈이다.
85년 예산안(일반회계)은 금년과 같이 세출보다 세입을 늘러 통속적인 사회복지 증진을 동결하고 있는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긴축예산안을 짰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아울러 겁도 없다 할 수 있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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