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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한국인< 3R >뉴욕 브로드웨이의 알부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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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브로드웨이의 교포들은 일반적으로 화제가 부족한듯 싶다.
술집이나 식당에서 자리를 같이하는 교포들은 흔히 골프이야기로 흥을 돋우다가는 『그 친구, 새 집을 샀다』 라든지 『저 친구는 떼돈을 벌었다』 는등 돈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게 그토록자연스러울수 없다.
거꾸로 말한다면 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해야하는 이민생활에서 화제가 풍성할수 없고, 또 열심히 일하다보니 적지않은「알부자」들이 태어났다는 결론인 셈이다.
실제 브로드웨이의 알부자는 열손가락으로도 부족하다.
맨해턴에서도 번화가인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27가에서 32가사이에 위치해있는 도매상이라면 대부분 교포사회의 심벌이자 선두그룹, 이른바 알부자 집단으로통한다.
이들의 본거지를 찾아보면 우선 한글간판이 명동을 방불케한다.

<한글간판 명동방불>
「아리랑」「여보」「유성무역」「동진」 「서울」 「코리아나」 「원개한약방」 「보금당」 「이씨무역」「CC백화점」등등….
교포사회의 경체력을 과시하는 「축소판 한국」이자 수많은 알부자를 배출한 산실의 이름이다.
그런데 누구를 막론하고 돈이야기라면 무조건 입부터 봉해버리는것 또한 한국의 부자촌과 다름이없다.
『글쎄,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세계적인 불황에 여름철이 겹쳐 사업이 슬로우 (부진) 해서…』-.
종업원 1백여명의 브로드웨이 모자공장을 경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회사를 설립, 현재4∼5채의 건물을 소유한다는 민경완씨(40·대전출신)같은 이름난 알부자마저 입을다무니 브로드웨이실상은 다소 가감이 불가피하다.
도매상친목단체인 「뉴욕경제인협회」 (회장 유득종) 가 펴낸 「뉴욕브로드웨이 교포비즈니스현황」을 살펴보자.
브로드웨이 26가로부터 24가까지 불과 5백m 남짓하게 한줄로 진치고 있는 교포업체는 무려 3백여개-.
이가운데 연간매상이 1천만달러이상 3천만달러에 이르는 대형업체가 3개이며6백만달러이상 1천만달러가 12개, 나머지는 교포사회의 군소업체로 구분된다.
브로드웨이의 입방아들은 따라서 이같은 통계에 나름대로의 정보를 토대로 유득종(46·데이비드 앤드 영사 대표·대구)윤성수(42·유성무역·전북)조일환(46·코만대표·대구) 김혁규 (45·혁가방대표·합천)박지원 (41·데일리패션대표)씨등을 우선적으로 손꼽는다.
가발업 시작 10여년만에 크나큰 부를 쌓아 한때 뉴욕한인회장도 역임한 박지원씨는 현재 전용창고까지 마련해놓고는 시계와 가발업계를 주름잡는 유력인사.
그런가하면 공무원출신의 김혁규씨는 현재 가방만을 취급하는 외곬 사업가다.
또 국내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의류도매상으로 변신한 조일환씨는 교포신문에 사진한장 내놓지 않고도 교포사회의 그늘진 곳곳을 찾아 헌금하는 독지가로 유명하며, 이민생활 14년째인 윤성수씨는 본국에서부터 익힌 사업솜씨로 잡화도매에 대가를 이뤘다는 얘기다.

<링컨 콘티녠틀 몰아>
잡화를 취급하는 코리아나대표정수일씨(41·전남)와 장신구전문점인 뱅가드대표 조병창씨(45·합천) 등 이지역에 굵직한 간판을 내걸고 있는 교포 대부분이이 대열에 속하는 것도 물론이다.
교포사회의 알부자는 그러나 브로드웨이 도매상가를 벗어나도 얼마든지 많다.
교포밀집지역인 플러싱의 박세순씨 (48·구화식품대표·서울) 는 식품업계의 선두주자로서 맨해턴과 허드슨강 건너 뉴저지에 각각 대형식품점을 소유하고 있는 오상선씨 (47·서울) 와 쌍벽을 이룬다.
맨해턴의 박윤수씨(14·대구)는 의류업의 체인화를 이룩한 장본인이며 브롱스의 곽도섭씨(46·대구) 는 미국식품업계에 도매상으로 뛰어든 개척자.
그리고 자메이카의 김창일씨(46·서울)맨해턴의 김학선씨 (44·충북) 포트리의 장영식씨 (46·서울) 등은 청과업계의 알부자-.
백화점을 경영하는 정해준씨 (47·서천) 와 권오덕씨(46·서울),그리고 약품업계의 권오윤씨 (46·강능) 와 중동납품업자 이창환씨(47·서울)도 같은 대열에 속한다.
이들 대부분은 롱아일랜드나 버겐카운티등 뉴욕의 이름난 동네에 주택이나 콘더미니엄을 마련해 놓고 맨해턴까지 출퇴근하며 여기에 자동차 또한 링컨콘티녠틀이나 캐딜랙이 많아 미국의 평균 가정의 수입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
뿐더러 이들 알부자들은 사생활에서도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되지못한 다른 교포들과 차이가 많은것도 사실이다.
우선 서울행여행이 잦은게 특징.
그리고 금연파가 많고 골프실력이 하나같이 신통치 않은터에 부부금실은 남달리 좋은것으로 소문나있다.
사업가로서 1년에 한 두 번씩 서울을 방문한다는 것은 부연지사-.
금연파가 많다는것은 경제적안정과 함께 건강에 눈을 떴다는 풀이겠고 주말도없이 열심히 뛰다보니 골프핸디가 항상 30에 머물수 밖에 없고 부부금실만 좋아지더라는 얘기다.

<미국평균수준 넘어>
교포사회 대소사에 희사금을 선뜻 내놓았다든가 미국에있는 졸업생이 모교에 피아노를 기증했다는등의 재미교포에 얽힌 미담의 주인공 역시 이들 알부자가 중심이다.
물론 이들 알부자그룹에도 비판적인 견해가 없지않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사업가는 도매업자 대부분이 사업의 규모에 비해 내실이 빈약하다며 소문과는 다르다고 귀띔한다.
창고속에 쌓인 자신의 물건이30만달러 상당이라는 이 사업가는 거래액이 무슨 대수냐면서 『실제맨해턴일대에서 새 사업에 20만∼30만달러를 선뜻 내놓을수 있는교포가 몇명이나 되느냐』 고 반문한다.
말하자면 호텔이나 식당등 현금만 꼬박꼬박 거머쥐는 알짜배기 교포를 외면한채 외형만으로 알부자 운운한다는것이 도시 잘못이라는 얘기다.【뉴욕=이근경현지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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