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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황의 "유감"표명은 심도 깊은 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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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히로히또」일황이 6일 저녁 전두환 대통령을 초청한 만찬석상에서 공개적으로 과거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던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일황의 이번 발언은 국제법적·외교적 의미에서 구속력을 갖는다기보다는 양국 국민간의 앙금진 감정을 어느정도 해소해 보려는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지닌다고 봐야한다.
전대통령의 방일교섭중 양국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일황이 어느 수준으로 과거 일제의 한국침략에 대해 사과를 하느냐는 문제였다.
일본측에서는 2차대전패전후 평화헌법으로의 개헌으로 일황은 국사행위, 즉 정치적 활동을 일체 할수 없도록 돼있는 만큼 사과 등 책임있는 발언이나 외교행위를 할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일황의 발언은 양국의 교섭대상이 될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우리정부는 일황이 과거 한국을 지배했던 당사자이며 일본의 상징적 존재인 만큼 일본 국내법문제를 뗘나 사과를 받아내야만 한국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양국간의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결국 일황은 「유감」으로 사과의 뜻을 표명하고 일황이 표명치 못한 부분은 「나까소네」수상이 부연 설명한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나까소네」수상은 오찬사에서 『유감스럽게도 금세기의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귀국 및 귀국국민에 대해 다대한 고난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과거의 과오를 시인하고 『본인은 정부 및 우리국민이 이 잘못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되새김과 아울러 장래에 이런 일이 없도록 굳게 결의하고 있다』고 밝혀 일황의 만찬사보다는 좀더 명확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시했다.
국제법상 국가간의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으로는 △원상회복 △손해배상 △진사 등이 있다.
일황과 수상의 유감표명은 국가간의 일종의 진사행위로 볼 수 있다.
물론 과거 65년 한일 기본조약체결시 양국외상 공동성명에서 『과거관계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일본측 진사가 있었다.
이번 일황의 발언도 이 범위안에서 이루어졌으나 「반성」이라는 어휘대신에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장래를 향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외교적으로 진사의 방법과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도 매우 미묘한 문제다.
우선 외교문서화여부·공개여부·표현기법 등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진다.
일본은 78년 일·중공 우호조약 체결시 공개적인 진사형식대신 일황과 등소평간의 회견형식으로 유감의 뜻을 표했다.
한국에 대한 일황의 이번 발언은 만찬사인 점으로 비추어 비록 공식외교문서는 못되더라도 공개적인 사과가 되었다는 점에서 좀더 심도가 있다고 볼수 있겠다.
표현의 방식으로는 국가간에 외교적으로 사과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유감」(regret)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
물론 외교적으로 좀더 강한 「사과」(apologize) 「후회」(resent)등의 용어도 때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나 「유감」표명으로써 사과를 대신하는 것이 보통이다.
「포드」미대통령이 74년 방일시에도 일황은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러나 이번 일황의 표현에는 「진심으로」(성??)라는 단어가 붙음으로 해서 일황이 지금까지 5차례의 사과발언중 가장 강도 높은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가 일부에서는 일황의 표현을 사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중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일본이 과거 한국을 지배한데 대한책임의 차원에서 볼 때는 흡족한 표현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브란트」서독수상은 70년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나치의 폴란드인 학살현장에 헌화하고 30초동안 무릎을 꿇었으며 귀국해 『독일인의 이름을 남용하여서 저질러진 백만배의 범죄에 대해서 우리국민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말한 예가 있다. 우리정부 당국자는 이번 일황의 발언이 『과거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심도가 있다』고 평가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일황이 유감표명과 함께 일본이 과거 각종 문물을 한국으로부터 전수받은 시대가 있었다고 언급한 점을 『한일 교류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황의 발언에 대한 만족·불만족여부를 떠나 이번 발언을 계기로 앞으로 한일양국이 어떻게 진정한 이웃임을 행동으로 보이느냐가 남은 과제라 하겠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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