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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웰빙가에선] 수퍼시니어 건강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7호 22면

“여기 채용 신체검사하는 곳이 어딥니까?”

60세가 넘어 보이는 노신사가 병원 앞에서 길을 물었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뭔지 모를 당당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그의 기대감과 의욕이 내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노년기가 이처럼 당당하면 좋으련만, 며칠 후 진료실에서 만난 50대 여성 환자는 그렇지 못했다. 힘이 없어 보인다고 말을 건네자 눈물을 쏟았다. 얼마 전 남편이 명예퇴직을 했다며 대학졸업반과 고등학생인 아이들과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이라고 했다. 한 달도 안 되어 그녀는 남편과 함께 왔다. 회사 밖에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처지가 되니 지난날을 후회하며 집에만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지 고민하느라 잠도 못 자고 수척해 진다고 했다. 아내 역시 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볼이 패여 있었다.

일러스트 강일구

우선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그의 삶과 현재 겪는 어려움을 경청했다. “당신은 대단한 삶을 살아오신 분입니다”라고 얘기해줬더니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평범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도 없었고 더군다나 칭찬을 받는 것은 처음이라며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행복은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에 달렸으니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얘기해줬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매일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한 가지씩 칭찬하기로 약속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이후 아내를 통해 듣는 소식은 좋은 것들이었다.

요즘 진료실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 보인다. 하지만 여유롭게 잘 지내던 여성 환자가 갑자기 힘들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직장 다니는 딸·며느리 대신 손주를 키우면서 안 좋아졌다고 얘기하는 일이 종종 있다. 50~60대 여성들은 육아 상황이 올까 두렵다고들 한다. 잘 자라다가도 한 번 아프거나 다치면 키워준 공은 간 데 없고 죄인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부부가 체중 조절이 필요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주중에 아이를 처가에 맡긴다고 했다. 아이 아빠가 “장인어른이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배드민턴을 치고 매일 과자를 사주셔서 간식 조절이 힘들다”며 아내를 힐끗 쳐다봤다. 아이 엄마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얼른 말했다. “○○○할아버지는 좋으신 분이구나. 운동도 함께 해주시고. 다음부터는 운동하고 나면 할아버지랑 과자 대신 과일이나 물을 사는 것은 어때?” 아이에게 ‘우리가족 건강지킴이’ 역할을 해 보라고 주문하니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키워주는 조부모나 맡기는 부모 누구도 맘이 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기퇴직이나 황혼육아를 맞는 시기엔 근육량이 감소해 근력이 약해지고 각종 감각·인지기능이 퇴화하기 시작한다. 또한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노년기 우울증 같은 문제가 생기기도 쉽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정심을 잘 유지하려면 개인의 각별한 노력과 가족 구성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물론 장기적으론 이런 문제들이 세련되게 해결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국가 정책으로 잘 정립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친정엄마에게 육아를 전적으로 떠넘겨 둔 죄인이기 때문이다.

박경희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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