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회고록 불똥 … 북, 김양건·원동연 대대적 특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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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으로 말미암아 북한 권력 내부에서 대대적인 조사와 특별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가 15일 익명으로 말했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재임 당시의 남북한 비밀 접촉 등을 기술한 것과 관련해 북한 당국이 대대적인 조사를 했다”며 “대남사업의 총수 격인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비서, 그리고 원동연 제1부부장과 맹경일 부부장 등 통일전선부 소속 고위 인사들이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무진들은 현재도 검열을 받고 있는 중”이라며 “책에 있는 내용과 비교해 실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를 조사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재임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회고록 형태로 정리한 『대통령의 시간』을 발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책에서 “북한이 … 정상회담을 하는 조건으로 우리 측이 옥수수 10만t, 쌀 40만t, 비료 30만t과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를 제공하고, 북 측의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335페이지)이라고 썼다. 또 정상회담 추진 비사를 설명하면서 "임(태희) 장관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합의서를 써 준 적은 없습니다… 김양건이 그대로 가면 죽는다고 해서…’”라고 적었다. 또 “2011년 5월 중국을 방문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정돼 있던 공연 관람을) 취소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며 “중국에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으나 중국 측으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썼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대목들이 북한 입장에서 한국에 지원을 구걸하거나, 김정일과 관련한 정보가 새어 나갔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특히 북한 당국은 회고록 중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북한 측이 경제 지원을 요구한 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12월 사망)의 중국 방문 내용 부분 등을 문제 삼고 있다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들이 전했다.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김양건 비서는 의혹을 벗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상당수 인사들은 좌천 또는 숙청됐거나 혁명화 교육(사상 교육)을 받고 있다고도 전했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김양건) 통전부장을 대행할 정도로 남북관계 업무를 총괄했던 원 제1부부장이 지금은 해외동포담당 부부장으로 좌천됐다”며 “해외동포 업무를 담당했던 맹경일 부부장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숙청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통일전선부가 집중 조사 대상이 됨에 따라 대남 업무 상당 부분을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이 챙기고 있다고 한다.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는 당국자는 “최근 통일전선부 업무 일부를 군 출신에다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전했다. 회고록 여파로 통전부의 위상이 축소됐다는 뜻이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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