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4조로 추락 … ‘M&A 재혼’ 새 살림 차리는 AOL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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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기의 결혼과 파경. 그리고 새로운 출발. 인수합병(M&A)을 반복해 온 AOL(아메리카온라인)이 새 짝을 맞았다. 미국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33%로 1위인 버라이즌이다.

 버라이즌은 AOL을 44억 달러(약 4조8334억원)에 인수한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전날 종가에 17.3%의 웃돈을 얹은 액수다. AOL이 다른 기업과 합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4년 전에는 세계 최대의 인수합병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1년 미디어 공룡 타임워너와의 합병이다. 당시 미디어 업계에서 ‘세기의 결혼’으로 여겨졌던 대사건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당시 AOL의 몸값은 1830억 달러(약 201조원)에 달했다. 닷컴버블이 최고조로 치닫던 때였다. 미국 최대 PC 통신 및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였던 AOL의 가입자는 2900만 명이었다. 타임워너도 못지 않았다. 케이블 방송 시청자는 2000만 명에 달했고, 영화·잡지 매체 등을 운영했다. 최고의 콘텐트 기업과 최강의 인터넷 기업의 합병은 세계 최대 종합미디어 그룹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으로 시장은 예상했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4개월 만에 파경 조짐을 보이며 이내 ‘잘못된 만남’으로 결론났다. 초고속 인터넷 접속 기술이 발달하며 전화 접속 인터넷 서비스의 최강자인 AOL의 입지는 좁아졌다. 수익구조도 악화됐다. 합병 이듬해인 2002년 1000억 달러의 손실을 냈다. 게다가 내부 제보를 받은 워싱턴포스트(WP)가 2002년 AOL의 광고수입 부풀리기 행태를 보도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가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2004년 총 5억1000만 달러의 과징금을 냈다. 그 여파로 AOL 창업주인 스티브 케이스는 회사를 떠났다. 8년 만에 결국 양측은 갈라섰다. 2009년 타임워너와 AOL은 분사하며 역사상 최악의 M&A란 오명을 얻었다. 잭 웰치는 “기업을 인수한 회사(타임워너)가 볼모로 잡힌 대표적인 예가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이라고 평했다.

 타임워너와 헤어진 AOL은 구글 최고경영자(CEO)였던 팀 암스트롱을 CEO로 맞아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11년 허핑턴 포스트를 3억1500만 달러에 인수하는 등 콘텐트 부문을 강화했다. 특히 모바일 광고 사업을 보강했다. 이를 위해 온라인 동영상 광고 중개 업체인 애댑TV와 광고효과 측정전문기업인 컨버트로를 인수했다. 기업 고객이 온라인 광고를 자동으로 거래할 수 있는 광고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 변신이 통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씨넷은 “버라이즌이 AOL을 인수한 핵심 배경에는 광고 플랫폼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WSJ은 “버라이즌은 올 여름 모바일 기기에 초점을 맞춘 동영상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성장세가 정체된 무선시장을 벗어나 신사업의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광고전문매체 애드에이지는 “버라이즌의 각종 모바일 데이터에 AOL의 광고 기술이 합쳐지면 여러 기기를 포괄하는 광고 기술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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