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 선수 메쳤을 때 손바닥 깨져라 박수쳤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일전에 LA에서 손기정 할아버지가
성화 받쳐 들고 달리는 걸 보았지?
교민들 환호 속에 태극기 물결 속에.
지난날 베를린의 우울한 하늘 아래
피멍을 가슴에 달고 울며 달린 젊은이
월계관 바칠 조국도 그에게는 없었다.
이제 반백년 세월은 흘렀어도
일제 겪은 우리는 콧등이 시큰했다.
그날에 사무친 한이 이리 깊음이니라.
이땅의 젊은이들아 가슴 깊이 새겨 두거라
나라와 말과 글, 이름까지 빼앗고도
그것이 침략이 아니라고 떼거지 쓰는 그들.
이웃 사촌끼리 손잡고 지내잔다
그야 이를 말이던가 그게 우리 인정인걸
그러나 경계할지니라 간교한 그들 웃음.
언제나 한발 앞서 돌아다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뼘쯤 내려다보는 높이에서
뒷머리 쓰다듬으며 사귀어야 하는 이웃.
짓밟힌 터전에서 돋아난 새싹들이
어느새 세계에서 10위에 올라서다니
장하다 대한건아야 불사조의 넋들아!
신준섭의 주먹이 정상을 부쉈을 때
꽃돼지 서향순이 신기록 과녁뚫고
귀여운 보조개 지며 환하게 웃었을 때,
우리 이쁜이들 농구에서 핸드볼에서
이기고 또 이기고 얼싸안고 울었을 때,
고국은 삼복더위에 가을 바람 불었지.
김원기가 「오사나이(장내청일)」를
찍어 눌렀을 때,
유인탁이「가미무라(상촌정화)」를
다리 잡아 젖혔을 때,
극락조 꽃다발 든 손
높이높이 들었을 때.
간장배달 영감님의 막내둥이 안병근
그 집념의 사나이가
「나까니시(중서영민)꺾고
애국가 따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일 때,
최후의 웃음위에 웃음 아낀 장사
왕발의 하형주가
「미하라(삼원정인)」를 들어메치고
태극기 우러러보며 큰 웃음 웃었을 때,
내노라는 일본 검도가 어이없이 침몰할 때,
손바닥이 깨져라고 박수 친 까닭을
다시금 8·15맞아 새겨 볼 만한 일이다.
장량하 (시조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