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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교수의보석상자] 호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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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를 방문했던 10여 년 전 그해 겨울은 영하 20도를 밑도는 맹추위로 무척 추웠다. 나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일하는 동료와 함께 아르바트가를 지나다 길가 좌판에 놓여 있는 수많은 호박(amber)을 보고 길을 멈췄다. 좌판에 놓인 호박은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에 눈에 띄는 발틱 호박들이 보여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들르기로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아쉬운 마음으로 남아 있다.

보석은 거의 다 결정질 광물들이지만 호박은 진주.제트.상아와 더불어 광물이 아닌 유기기원의 물질이나 보석으로 간주된다. 호박은 다른 명칭으로 수시나이트(succinite)라고 불리기도 한다. 호박은 황갈색을 띠며 굳기는 2~2.5로 매우 낮으며, 비중은 1.05-1.09다. 이는 나무 수지가 화석화된 것으로 주로 약 5000만 년 전에 주로 생성되었다. 나무는 상처를 입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자기방어 수단으로 수지를 내뿜는다. 그런 수지가 단단하게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호박이다. 나무에서 흘러나온 수지가 호박이 되기 전의 불안정한 것을 코펄(copal)이라고 한다. 코펄은 덜 성숙한 호박으로 이해하면 된다. 코펄은 호박보다 더 진한 수지의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유기용매에 더 쉽게 반응해 아세톤(손톱 지우개)을 떨어뜨리면 표면은 곧 끈적끈적해진다. 흔히 콜롬비아 호박 혹은 보다 정확하게 콜롬비아 코펄로 거래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외모로만 보면 호박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지만 최근 연대측정 결과 불과 수백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표트르 대제에게 사방 14m, 높이 5m 크기의 호박룸을 선물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의 이 방은 빈틈없이 모두 호박으로 장식되었다. 그 후 이 방은 예카테리나 여제 궁전으로 옮겨졌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이를 분해해 27개 상자에 담아 독일로 이송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후 이 호박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수천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이 보석들은 보석 사냥꾼들에게 끈질긴 추적의 대상이 되었으나 아직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2003년 도시 탄생 300주년 기념으로 이 방을 다른 호박들로 원래의 상태로 복원했다.

호박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해온 가장 오래된 보석 중 하나다. 곤충의 화석이 들어 있는 것들은 진귀한 호박으로 간주된다. 곤충을 함유한 호박은 '주라기 공원'이라는 소설과 영화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호박 속에 포함된 생물체의 유전자를 추출하여 중생대의 지배자인 공룡을 복원하였다고 얘기는 시작된다. 소설가의 상상력이 뛰어나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호박 속에 포함되어 있는 곤충이나 식물체의 DNA를 추출하여 그 생물종이 멸종된 시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호박이 생성된 시기까지 밝혀내고 있다.

문희수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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