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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남원 미꾸라지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88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최근전북 남원은 때아닌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이들 관광객에게 이색적인 미각으로 미꾸라지숙회가 등장한다.
숙회란 메뉴는 어느 요리사전에도, 그리고 어느 타지방에가도 찾아볼수 없으나 남원 거리의 곳곳에서는 숙회찜을 볼수있다.
20여년전 남원의 「새집」이란 음식점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숙회는 이제 남원의 전통음식이 되고있다.
달리 표현하면 「미꾸라지찜」이라고 할 수 있는 이메뉴의 이름 「숙회」에는 모순이 없는 것도 아니다.
회란 원래 날것을 간장이나 고추장을 찍어 먹는것인데 그회위에 익힌다는 의미의 「숙」자를 붙여 놓았다.
이 메뉴를 개발했다는 새집의 서삼례씨(61·전북남원시천집동l60)는 원래 은어횟집을 하고있었으므로 손님이 「회」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숙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므로 「회」 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지않겠느냐는 의견이다.
메뉴의 이름이 어쨌거나 추어탕의 재료로만 쓰였던 미꾸라지란 식품이 멋진 술안주인 숙회로도 이색적인 맛을 자랑하고있다.
서씨가 숙회를 고안해 내기까지에는 적잖은 실험과정이 있었다.
중국요리 가운데 초두부라는것이 있다는 손님의 말을 듣고 연한 두부와 미꾸라지를 함께 넣어 삶아보는 실험도 여러번했다.
손님이 가르쳐준 조리법에 의하면 찬두부와 미꾸라지를 한술에 넣고 은근히 불을 지피면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견디기가 어려운 미꾸라지가 두부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삶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꺼내 얇게 썰어 간장에 찍어먹기도 하는 것인데 두부와 미꾸라지를 함께넣는 방법은 서울에서 추어탕 끓일때 사용하는 조리법이기도 하다.
서씨의 실험에서는 미꾸라지를 두부속으로 유인해 넣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며칠동안 흙을 빼느라 물에담가 두었던 미꾸라지들이 힘이 없어서인지 두부에 머리까지만 집어넣고 그냥 삶겨버리더라는 것.
미꾸라지에는 심한 흙냄새가나기 때문에 추어탕을 끓이더라도 며칠을 물에 담가 냄새를 빼내야한다. 갓잡아와 싱싱한 미꾸라지로 초두부를 만들었다고 해도 냄새때문에 먹기가 곤란하다는 서씨의 경험담이다. 또 아무리 싱싱한 미꾸라지라도 전신을 모두 두부속에 집어 넣지는 않더라고.
몇 번의 실험후 초두부는 포기하고 찜을 만들어 보았다.
며칠동안 물에 담가 흙을 뺀 미꾸라지를 찜통에 찐후 두터운 돌프라이팬에 파·마늘·풋고추등들 넣고 다시 쪄내면 미꾸라지가 꾸덕꾸덕한 상태가 된다.
이것용 초고추장에 찍어먹거나 배추 겉절이에 싸서 먹기도 한다.
꾸덕꾸덕해진 미꾸라지는 큰멸치처럼 보이나 특유의 구수한 맛이 잘살아 독특한 향토미각이 되고있다.
새집에는 미꾸라지를 며칠씩 묶혀두는 물통이 있는데 미꾸라지의 역한 냄새를 빼내는 역할을 한다.
미꾸라지의 뼈는 잘 무르지않아 추어탕을 끓일때도 이를걸러내지만 두번에 걸친 찜조리법으로 뼈부분이 딱딱하게 걸리지는 않는다.
7일이면 입추. 한더위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소슬바람이 불어 올 것같은 느낌을 우리는 입추에서 맛본다.
미꾸라지는 바로 입추에서부터 진미를 내기 시작하는 늦여름과 가을에 걸친 식품이다. <김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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