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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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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A time to be born, a time to die(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A time to plant, a time to reap(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기타 치며 팝송깨나 부른 예전 교회 오빠라면 입에서 술술 나올 것이다. 미국 록그룹 버즈(The Byrds)의 ‘돌고 돌고 돌고(Turn! Turn! Turn!)’에 나오는 가사다. 1965년 빌보드차트에서 3주간 1위를 했다. 50년 전 일이다.

 노래는 진실을 넘어 진리로 시작한다. “모든 건 때가 있다(To everything. There is a season).” 작사가는 놀랍게도 지혜의 왕 솔로몬이다. 전도서 3장 1절부터 8절까지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쓴 반성문이자 권고문이다.

 지금 오빠들은 원조 ‘버즈’를 모른다. ‘가시’ ‘겁쟁이’ ‘남자라면’을 부른 또 다른 버즈(Buzz)를 알 뿐이다. 그들은 무거운 진실보다 사소한 현실에 더 관심이 많다. “뜬금없이 설레게 했던 말/ 라면 먹고 갈래”(‘남자라면’ 중에서). 신문 안 읽는 오빠들은 라면 받침대로 신문지를 활용한다. 신문 좀 읽으라고 잔소리하면 ‘딴 거 읽을 게 너무 많다’며 꽁무니를 뺀다.

 나이 든 자들은 신문을 펼친다. 온통 모래시계 검사 이야기다. 젊은이들은 그가 왜 모래시계 검사인지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모래시계’가 드라마였다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다. 확실히 모든 건 때가 있다.

 모래시계 검사를 만난 적은 없다. 그 대신 모래시계 PD는 자주 보았다. 같은 방송사 선배였다. 20년 전 대한민국은 ‘모래시계’로 들썩거렸다. 지금의 ‘삼시세끼’에 비할 바 아니었다(나영석PD에겐 미안). 모래시계의 김종학 PD는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를 추억하는 책에 나는 이렇게 썼다. “겁을 주진 않았지만 그 앞에 서면 겁을 먹었다. 그의 탑은 높았고 장엄했다. 그의 모래시계는 모래성을 쌓은 자들을 반성하게 했다. 금기를 깨고 드라마의 역사를 바꾼 사람. 분명한 건 하나. 그는 드라마를 만들었고, 스스로 드라마가 되었다.” 불과 20년 전 일인데 아이들은 자랐고 불세출의 PD는 몇 해 전 허름한 고시텔에서 쓸쓸히 생을 접었다.

 모래시계 검사는 페이스북에 결국 진실은 밝혀질 거라 적었다. 그러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수사’를 요구했다. 진실은 하나일 텐데 실체적 진실은 또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시 돌고 돌아서 가자. 전인권의 한국판 ‘돌고 돌고 돌고’는 이렇게 끝난다. “어두운 곳 밝은 곳도 앞서다가 뒤서다가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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