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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독자의 대화"는 파도를 타고…|「심상」지 주최 속초 『해변 시인 학교』를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속초=임재걸기자】시인과 독자의 무르익은 대화로 여름밤이 깊어갔다.
한여름에 들린 / 가-산/독경소리/오늘은/철늦은 서설이 내려/비로소 벙그는/매화 봉오리…」
은발의 시인 김광림씨가 자신의 시 『산』을 낭독했고 ,독자들은 『산』의 시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월간 시전문지 「심상」이 지난 27∼30일까지 연 제6회 해변시인학교의 강의실이 있는 속초영랑초등학교. 60여명의 시인과 2백40여명의 독자들은 모두 9개가족으로 나뉘어 4∼5명 의 시인과 20여명의 독자가 각각 한교실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익히고 시를 이야기했다. 독자와 만난 시인은 김남조 박희진 성춘복 박성룡 김광림 이탄 김종해 성찬경 강우식 강-호 김종철 정진규씨등과 공주의 나태주, 광주의 범대-, 대구의 권기조, 속초의 최명길 이성희씨등 전국에서 모여든 중견들이었다. 독자들은 여대생·회사원·교사·가정주부등 다양한 계층이었고 그 중에는 75세가 된 할아버지도 있었다.
『시를 읽다보면 어떤 부분은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막상 써 보려고 하면 써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까요.』
많은 독자들이 이 같은 질문을 했다.
시인 이명주씨는 『시의 한줄 한 줄은 이야기처럼 쉽게 보이지만 시인은 전체적인 완성을 얻기 위하여 고심한다』고 말하고,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모드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다. 국어교사인 황순애씨는 『어떤 시의 경우 이해는 되지만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지 않다.』 『내용이 너무 드러나 감추는 것이 없어 재미가 덜해진다.』고 지적했다. 한 시인이『진짜 평론가이시군요』하고 말하여 모두가 긴장을 풀고 웃었다.
대화는 해변에서도 이어졌다. 석초해수욕장에 군데군데 모여 앉은 시인과 독자들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시심에 젖어들었다.
딱딱한 문학이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을 묻고 시인들의 시를 들으면서 시인과 독자는 한껏 가까워졌다.
독자들은 지면을 통해서만 보던 시인을 직접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다.
강경희양(24·인턴조선직원)은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에 한번씩 모여 서로 시를 나누어 보는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많은 시인들이 참가한 시인학교에 와서 그들을 만나보니 기쁘다』고 말했다.
박상해(24·농업·경기도 용인군 남서면 전궁리 204)는 『사람은 그리움에 살고 시는 그 마음을 달래주는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시인학교에서 삶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75세이면서 아직도 정정한 유-동씨(서울 종로구 이화동 90의 8)는 『북만주 등을 다니며 평생을 떠돌아 살았으나 글 한줄 남기지 못하여 허전했다』면서 시인들을 만나 생을 눈떠 가는 시간을 가져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해변시인학교는 「시를 통한 인간구원」 「현대인의 삶과 현대시」 「현대시와 동인활동」등 강연과 시창작교실·시극경연대회·가족별 소그룹공동토의·만남의 밤·특기 경연대회등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됐다.
29일 마지막 밤 캠프파이어가 피어오르고 시인과 독자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었다. 한 시인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 무리가 우리사회 일각에 있음으로 해서 이 사회가 더 맑아질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며 검게 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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