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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인간성상실의 「암흑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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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늘날 우리가 인간성을 상실하고 무엇인가에 의해서 스스로 노예화되고 있음을 고발하는 문명비평가들의 외침은 너무도 흔하여 오히려 그 절박감이 덜해진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존엄성을 잃고 무엇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현상일 것이다. 「듀이」(J. Dewey)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은 어떤 문제에 부딪쳐서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갈수 없을때 위기의식을 느끼게 마련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현대인의 위기의식은 원시인들에 비하면 차라리 사치스러운 것으로 생각될 수도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원시인들이 직면했던 거의 모든 난관들을 극븍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새로운 종류의 위기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밝혀내려면 인간성의 회복을 주제로 하는 인본주의 혹은 휴머니즘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고있는 휴머니즘(humanism)이란 말은 원래 『인문과학의 수련을 통한인간교육』이라는 뜻의 라틴어「humanitas」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은 다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중세적 억압과 권위로부터 인간성을 되찾자는 뜻으로 쓰였다. 이들에 의하면 중세는 봉건제도와 성직자들의 독단에 묻혀있던 암흑의 시대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봉건영주들의 농비나 신의 피조물 혹은 「죄인」으로서 스스로를 확인할수 밖에 없었던 비인간적 시대였다는 것이다. 「페트라르카」(Petrarca)나 「에라스무스」와 같은 휴머니스트들에게 인간은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인을 의미하였으며 무엇보다 각개인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하나의 인격이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인간이 모든 가치 위에 우뚝 서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특히 그들은 고전의 연구를 통해서 고대 아테네나 로마의 자유분방하고 교양이 높은 인간형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대인들이 자유와 평등을 한껏 구가하고 인간성을 마음대로 발현하던 이상적 인간들은 아니였다. 예를 들어「키케로」(Cicero) 는 자유분방하던 그리스인들을 부러워했고 법과 질서라는 감옥에 갇혀 살던 로마시민들의 운명을 안타깝게 여겨 「휴머니즘」의 기치를 높이 올렸던 사람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인간성의 상실이란 제국이라는 정치체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이 로마의 위신과 부강이라는 미명아래 파멸되는현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고대 아테네시민들은 중세적 억압이나 횡포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며 방대한 제국의 법질서와 막강한 통치력에 구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가 남은 가장 위대한 현자의 한사람인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사람들이었으며 무질서와 방종과 나태 속에서 마침내 「알렉산더」의 정복을 자초한 무책임한 인간상들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휴머니즘의 가장 고결한 가르침은 로마인들나 르네상스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던져진 절규였던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위기의식은 현대인만의 특유한 현상은 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휴머니즘의 기치가 각기 다른 빛깔을 띠고 어느 시대에서나 치솟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오늘날의 비인간화 현상은 인간의 지적산물인 과학이, 그리고 과학이 낳은 여러가지 제도와 기계기술이 인간위에 군림하게 됨으로써 빚어진 것이라고 요약할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막대한 재보를 허용하였으나 이것은 몇몇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쥐어졌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극심한 소외감에 젖어 색다른 노예상태를 괴로와하고 있다.
정치혁명은 군주를 몰아내고 지도자를 선출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듯이 보이나 이들은 과거의 어떤 폭군도 미치지 못할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혁명은 매스컴과 야합하여 대중문화라는 기이한 문화형태로 인간성의 깊은 내면적 분석과 통찰을 저해하고 오히려 인격의 형성에 장애물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현상은 결국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높은 인격과 교양을 동시에 제공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휴머니즘은 과학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할수 있는 도덕력의 함양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기 마련이다.
중세에는 사람들이 교회나 성직자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귀중한 존재가 될수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과학이 종교이고, 자연법칙이 신이며, 과학자가 성직자로 변모한다.
그런 뜻으로 「페트라르카」와 같은 휴머니스트가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현대는 암흑시대』라고 단언한다. 확실히 오늘날에는 과학적 설명만이 설득력을 지닌다. 그리하여 너무도 당연히 현대의 휴머니즘은 『과학』이라는 독단으로부터 어떻게 인간을 해방시킬 것인가에 몰두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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