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AIIB와 중국의 본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전 산업자원부 장관

중국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설립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명분과 실리 면에서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 인프라 투자를 통해 세계 물류를 개선하고 아시아 중소국들의 경제발전을 돕는다는 명분과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정책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독자 생존력을 확보하는 실리를 얻으려는 것이다.

 이번에 세 가지 여건이 중국이 AIIB 창립을 적극 추진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첫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은행(IBRD)·아시아개발은행(ADB)과 유럽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문제 해결 능력이 현격히 저하돼 이의 수정론과 대안론이 대두된 점이다.

 이와 관련해 미 의회가 중국의 IMF 쿼터 조정 요구에 제동을 걸어 중국이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창설하는 데 명분을 주고 있고, 미 의회의 정치적 양극화로 국론이 분열돼 국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이 약화됨으로써 중국의 외교 입지를 크게 열어준 것도 배경 원인 중 하나다.

 둘째는 미·중 관계의 진전이 AIIB의 창립에 좋은 여건이 됐다는 점이다. 양국 모두 복잡한 국내 문제와 역량의 한계라는 현실적인 요구에 순응해 ‘신형 대국관계’라는 애매한 상호 호혜관계 정립에 이르게 됐으며 미국의 아시아 정책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2기에 이르러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고 있다.

 셋째로 중국은 AIIB 창립이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일차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스스로 자국이 포기만 큰 속이 빈 배추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속을 채워 독자 생존력을 보강하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중국의 꿈은 그 많은 분야 중에서도 위안화의 국제화, 기축통화화와 함께 일대이로(一帶一路) 전략, 즉 중서부 대개발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그리고 자원의 자유수송로 확보 등을 성공시키는 것이 일차적 핵심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중국의 통화 당국은 미성숙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국제화, 기축통화화를 파상적이고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AIIB의 투자 실행과 자금운용 과정에서 미 달러화, 유로화와 함께 위안화도 중심 통화에 포함시켜 AIIB가 위안화의 국제화와 기축통화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짧은 자본주의 역사로 인해 국내자본 축적이 충분치 못하고 재정 금융 부실이 심각한 형편이다. 중국이 이 상황에서 일대일로라는 큰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방대한 재원을 확보함에 있어 자본자유화라는 불편한 과정을 우회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AIIB에 배어 있다.

 그러나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중국 혼자 주도해 성공시키는 것은 중국의 능력과 수준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국내 금융제도의 낙후성과 적은 국제금융 경험 때문에 국제금융 강국들의 협조 없이는 AIIB가 발행하는 국제채권의 신용등급을 AAA로 높게 받아내는 것도 힘들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중국이 그 원대한 꿈을 실현하려면 남과 협력하며 몸을 낮추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아직은 기존 국제경제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며, 국내적으로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한계에 허덕이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각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만한 정치외교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앞으로 이러한 중국의 꿈과 감추어져 있는 본심이 아시아와 세계의 공영 발전과 73억 세계인의 복지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자국 13억만을 위한 복지와 팽창주의의 수단으로 폄하될 것인지 예리한 눈으로 주시할 것이다. 향후 중국의 처신에 따라서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미·일 신 동맹과의 신패권주의 충돌을 촉발시키고 유럽·호주·한국 등 AIIB 참여 국가의 새로운 견제와 합리적 의심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은 AIIB의 성공을 위해 우선 이러한 본심을 감추고 AIIB에 참여한 금융선진국과 협력해 국제 다자 은행으로서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일단 발톱을 숨기는 것이다.

 한국이 AIIB를 통해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중국이 발톱을 숨기는 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지분을 확보하는 등 확실한 위치 선정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협력해 국내기업의 참여 확대와 함께 북한의 인프라 투자나 대륙철도의 연결 및 개혁·개방에 촉매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은 대립하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양 축을 유연하게 아울러야 하는 외교적 시험대에 서 있다. 동북아 정세는 격동하는데 우리에게는 생존방정식과 통일방정식을 연립해 푸는 고난도 게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