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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업계 엄살…한국 추격에 과잉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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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7월6일의 한국방문을 이틀 앞두고 한국기자들과 만난 「아베」(안배진태낭) 일본외상은 한일무역 불균형 시정방안을 묻는 기자질문에 『일본시장은 개방돼 있다. 1억2천만명의 인구가 있는 만큼 시장규모도 크다. 한국이 수출을 늘리면 되지 않는가』고 차갑게 되 쏘았다.
3월29일 서울서 열린 전경련주최 강연회에서「마에다」(전전리일) 주한 일본대사도 『한국측은 무역역조의 책임이 일본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대한 수출이 한국의 전체수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무역 불균형만을 강조할 것은 아니다』고 한국의 자세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일본정부 당국자들은 무역역조의 시정을 요구하는 한국측 주장에 대해 일단 책임을 시인하고 빈말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은근히 한국에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논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무자 회의에서 슬금술금 그런 식의 논조를 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고위층에서도 서슴없이 그런 말을 하고있어요. 「마에다」 대사나 「아베」외상의 발언은 그런 각도에서 볼 때 한발 더 나아간 것이지요』 동경에서 통상관계의 대일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일본 정부내에 싹트고 있는 변화를 설명하면서 그 배경에는 일본산업계 전반에 팽배하고 있는 대한 경계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한국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보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공격적 자세로 전환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82년부터였다.
81년 한국의 철강수출이 1백만t을 넘어서고 일본이 독점했던 동남아시장에 한국철강 제품이 끼어들자 일본국내에서는 마치 당장 한국제품이 일본시장을 석권한듯 과장된 소란이 일였다.
신 일본제철은 한국산 철강을 수입한 일본업자들에게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한국측에도 제품가격을 인상하도록 강력히 요청했으며 결국 포철은 이에 굴복, 가격을올렸다.
철강제품은 포철 건설에 일본이 협력했다는 사실 때문에 부메랑 효과의 대표적인 예로 지금도 그들의 입에 오르 내리고있다.
이 파문은 제 2제철건설에 대한 일본의 협조문제에 이대로 반영되어 일본 제강업계는 대한협조를 거부하다가 83년 가을 한국이 유럽국가로 방향을 바꾼 후에야 뒤늦게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표시했다.
한국상품을 견제한 또하나의 예로는 면사 덤핑 제소사건이 있다.
한국산 면사의 수입량이 81년의 22만 고리(곤)에서 82년에 31만 고리로 늘자 일본면방업계는 이해 12월 통산성에 덤핑제소를 했으며 결국 한국측이 자율 규제한다는 조건으로 다음해 6월 제소를 취하했다.
면사의 경우 일본의 연간 수입량이 55만 고리이므로 한국산 면사의 수입급증에 비명을 올린 것은 이해가 간다 하더라도 철강은 한국산 수입량이 일본철강 생산량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므로 자국시장을 잠식하는 이른바 부메랑 효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엄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조성된 위기의식이 첨단산업으로 확산됨으로써 일본국내에는 지금 반도체·유전공학·소재산엄등 분야에서 한국이 멀지않아 일본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파 경계심이 팽배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파견되는 산업 시찰단들은 일본 기업들이 공장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몇해전만해도 웬만한 시설은 거리낌없이 안내하더니 요즘에는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보인다는 얘기다.
한 산업시찰단 관계자는 건물과 응접실, 그리고 선전 VTR만 보고 간다고 쓴 입맛을 다셨다.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부채질하는데는 일본 매스컴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작년에 64KD램 개발에 성공하고 금년 5월 대규모 반도체공장을 준공하자 일본 신문들은 한국을 「제3의 초LSI양산국」이라고 부르면서 한일간의 반도체 기술격차를 한꺼번에 2년이나 단축시켰다고 칭찬과 우려를 동시에 표명했다.
권위있는 경제잡지 일경 비즈니스는 지난 가을 5명의 특별 취재반을 한국에 파견, 기술입국에 도전하는 한국 산업계의 모습을 66페이지에 걸치는 특집으로 다루었다.
모일간지의 이름있는 경제기자는 『일본으로서 제일 경계해야할 상대는 한국』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로 한국인들의 집념과 근면성을 들었다.
우리의 대일 수출 실적도 금년 상반기 중 2O억5천6백만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3% 늘어났으며 일본의 경기 동향으로 보아 이같은 신장세가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무역정책이나 제도면에서도 지금 이상의 대한 규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본이 한국의 추격을 실제이상으로 절박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장기적 상호협력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인색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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