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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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뚜렷이 하는 일도 없이 주부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엊그제는 웬지 마음이 움직어 동네 시장을 떠나 전철로도 일곱정거장이나 되는 별산시강엘가 보았다.
사람도 북적거리고 물건도 층층이 많기도 했다.
퀴퀴한 냄새마저 진동하는 넓디 넓은 시장은 가히 서울의 명물다왔다.
어디선가 트로트의 흘러간 가락이 들리더니 굵직한남자의 노랫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크게 울려 나왔다.
발길은 나도 모르게 웅성웅성 모여 있는 사람들 쪽으로 향해졌다.
노랫소리의 주인공들을 본순간, 갑자기 가슴이 콱 메고 눈물이 핑돌았다.
평소에도 걸핏하면 눈물을 잘흘려 남편으로부터 「울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렇게 시장에서까지 나를울려주는 사람이 있을줄이야.
노래하는 부부는 둘 다 하반신이 없는 불구의 몸들이었다.
그들이 밀고 있는 조그맣고 납작한 손수레에는 실·이태리타월·손톱깎이·좀약·수세미등 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물품들이 가득 했다.
보통 그런 불편한 사람들의 얼굴은 어딘가 우수가 깃들인 모습이 많았는데 이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남자는 훤하게 잘 생긴 얼굴에 밝은 표정, 그리고 하얀 Y셔츠에 노래는 수준 이상인것 같았다.
꾸밈없는 표정이 친정동생이나 시동생같은 느낌마저 든 때문이었을까, 그젊은이의 동반자도 예쁜여성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들 부부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생각컨대, 많은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의 날도 있었을텐데 삶의 소중함 앞에서는 한낱 소용없는 것임을 알았으리라 그리하여 이젠 자연스럽게 피워 내는 그미소들이 오히려 나를 울리긴 했지만 강인한 생활력은 고마왔다 나에게와 닿았던 슬픈 감정이 너무 커서였는지, 하나 팔아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하루였다.

<서울종로구창신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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