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현상기로 디지털 사진 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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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서울 독산동 ㈜캐리마의 이병극(51.사진) 사장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이제 사진현상소에서 거의 무용지물이 된 아날로그식 사진 현상기로 디지털 사진을 뽑을 수 있는 '디지털 프린트 시스템(DPS)'을 국내에서 처음 개발했다.

아날로그 현상기에 장착해 디지털 현상기처럼 출력할 수 있는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디지털 현상기의 15% 수준인 1500만원 선으로, 기존 아날로그 장비의 인화기.인화지.약품을 그대로 쓸 수 있어 경제적이다.

이 사장은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전국에 7000여 대의 아날로그 현상기가 방치돼 있다"며 "디지털 프린트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198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진 현상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80년대 말 연간 300여 대까지 팔 정도로 재미를 봤으나, 삼성항공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급기야 90년대 말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어려움은 더욱 심해졌다. 기존의 필름 사진 현상소가 하나 둘 문을 닫거나 디지털 인화점으로 바뀐 탓이다. 한때 135명까지 거느렸던 직원도 세 차례 구조조정이 끝난 90년엔 3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40억원을 투자, 1년여의 연구개발과 2년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2003년 첫 제품을 내놨다.

이 사장은 해외 수출에 주력했다. 특히 전 세계 사진 현상기 제품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03년 3월 일본 오리엔탈사 등의 대리점에 6대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수출 실적은 80대. 올해는 연말까지 90대를 수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생산제품의 대부분을 전 세계 2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 프린트 시스템 기술을 이용하면 150인치 이상의 대형 영상장치(멀티큐브용)도 만들 수 있다"며 "앞으로 회사를 먹여살릴 제품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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