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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개량주택 소·돼지 키울 곳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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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집 모양이야 어떻든 옛날엔 내 집이 있었지요. 주택개량을 해야한다고 어찌나 성환지 양옥집 짓고 보니 빚더미와에 올라앉아 빚 독촉에 시달렸어요. 결국은 팔아 넘겼지만 원금 갚고 이자 계산하니 전세방 값이 남더군요. 지금은 전세방신세입니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엔 더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남향받이로 지으려니까 군에서 고속도로 가시권 지역이라 동향으로 지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집이라는 게 사는 사람 편하게 지어야지 지나다니는 사람 눈 즐겁게 해주자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시골집이야 아무래도 곡식 쌓아둘 곡간이 있어야하고 소·돼지 키울 축사가 있어야하고 거름 쟁겨둘 퇴비사가 있어야지요. 양옥집이라고 울긋불긋 색만 칠했지 이런 영농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있습니까. 결국 별도 건물을 짓다보니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났지요.』

<실적에만 열 올려>
쾌적하고 위생적인 주거환경 제공, 도농간의 격차해소, 영농의 기계화와 과학화 촉진을 목적으로 한 농촌주택개량사업이 거꾸로 농민을 골탕먹이고 있다.
76년 이 사업을 시작한 이후 당국은 해마다 당해 연도의 농촌주택개량 목표동수를 책정하고 또 어김없이 1백% 목표를 달성했다는 실적그라프를 내놓고있다. 그러나 현지의 실정은 당국의 실적발표가 「성공적」일수록 그 뒤에는 농어촌의 현실이 무시되고 행정경직이 심화되며 농어민은 멍드는 모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주변인 경주시 율동-. 80년 3월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했다. 고속도로 주변에 있던 32채의 한옥이 불결하다는 이유였다.
시 당국은 고속도로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새로운 취락단지를 형성하려했지만 32가구 중 16가구만이 이 사업에 찬성했다.
다른 16가구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을 헐릴 바에야 고향에 눌러있을 필요가 없다』며 뿔뿔이 흩어져 이주해 버렸다.
당국은 이곳에 새로 짓는 집을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을 본뜬 골기와집으로 정했다. 관광자원의 몫을 겸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에 와서는 주민들을 빚더미에 얹어놓은 것이다.

<날림으로 지붕 새>
한석하씨(44)는 방3칸에 부엌·마루가 달린 15평형 한옥을 지을 때 대지1백5평은 철거보상비조로 분양 받고 융자3백12만원에 사채2백만원 등 5백12만원을 들였다.
사채이자와 융자금 상환에 몰린 한씨는 지난 3월 새집에서 불과 4년여를 살고 집을 내놓았다. 8백 만원을 받아 빚 처리를 하고 남은 돈은 불과 2백50여 만원.
꼴이야 어쨌든 간에 내 집 짓고 살던 사람이 4년만에 이웃 망성리의 전셋방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재 이 마을의 15∼20평형 16채 중 2채는 이미 전매됐고 3채를 신축당시의, 가격으로 내놓았으나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들 또한 한씨와 똑같은 사정의 사람들이다.
소위 가시권 지역의 미화를 위해서는 집주인이 싫다는 2층까지 올려야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신평2리 윤상태씨(49)는 79년 4월 군으로부터 융자 1백36만원, 자 부담 1백50만원으로 군이 지정한 시멘트블록조의 단층슬라브개량주택(15평)을 지었다. 이 정도는 윤씨 사정에 알맞는 것이었다.
군은 윤씨 집이 경부고속도로변이기 때문에 2층을 올려야한다고 했다. 윤씨는 2층을 짓는 것은 자기네 능력으로 무리라고 버텼다.

<군에서 공짜로>
어느 날 읍사무소에서 인부들을 몰고 와 윤씨 집 단층슬라브 위에 시멘트블록을 쌓고 베니어판을 붙인 뒤 지붕을 씌워 페인트칠을 해 7평 짜리 미니 2층을 급조했다. 물론 내부시설은 전혀 없는 마치 영화촬영장의 세트 같은 것이었다. 『워낙 빨리 급조를 하다보니 날림이 되어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지붕을 받친 각목기둥이 약해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합니다.』 공짜로 늘려준 집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윤씨의 말이다.
이에 대해 건천읍 관계자는 『윤씨가 자력증축은 어려울 것 같아 상부지시에 따라 가시권지역 미화를 위해 55만원을 보조, 외형을 보기 좋도록 가건물을 지었다』고 했다.
주택내부구조는 생활에 편리한 문화시설을 구비하고 건물의 외장(외장)보다는 내실 있는 검소한 주택을 지으며 주택개량희망자와 자부담능력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하라는 중앙의 지시가 현지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인 셈이다.
앞서의 한씨와 같은 딱한 경우는 곳곳에 있다.
성영옥씨(39·충남 논산군 연산면 연산리)는 철도 변에서 살다가 군 당국의 강제철거로 주택개량을 한 케이스. 82년 4월 대지1백 평에 17평형 양옥을 지으면서 농협융자 4백97만원(5년 거치·15년 상환·연리10%)을 빌었다.
품팔이를 하는 성씨 입장에서 1년 분 이자 53만5천2백60원은 엄청난 돈이다.

<이자 밀리자 차압>
최고장이 날아들고 결국 성씨는 지난 3월 8백만 원에 이 집을 팔았으나 농협융자금과 빌은 사채를 갚고 나자 남은 돈이 없었다. 지금은 월1만5천원씩에 인근 손광렬씨(50)의 문간방을 삭월세로 살고있다.
당시 성씨와 함께 집을 개량한 사람은 5명. 이미 2가구는 주인이 바뀌었고 진찬기씨(52·연산리1구255의5)도 집을 내놓았으나 팔리지 않고 있다.
주택개량융자금을 상환 못해 경매처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강원도 명주군 주문율읍 교정7리 김순철씨(62)는 78년 4월부터 53개월간 매월이자 1만1천8백32원씩 62만7천96원을 불입한 후 계속 물지 못해 연체금이 불어나자 15평 짜리 집이 경매됐다.
주문율단협 관내에서 78년부터 83년까지 지출된 융자검은 1백74동에 4억6천5백24만원. 5월말 현재 연체율은 54%로 현재 경매됐거나 진행중인 것이 5∼6건에 이른다.
최선평 조합장(44)은 『주택자금의 이자는 매년 연말에 전액 결산되기 때문에 연체 분도 자체자금으로 계산되어 조합운영상 손실이 크다』며 『작년 연말의 경우 대체이자액은 3백만원이나 회수율은 아직까지 10%를 밑돌고있다』고 했다.
사업착수의 선후·희망자의 우선 순위, 자금회수의 전망 등을 고려하지 않고 『눈에 띄는 곳부터 바꾸고 보자』는 전시행정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현재 군에서 지정해주고 있는 농촌표준설계도(15∼25평형 규모)도 농촌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얘기다.
설계도는 변소가 수세식으로 되어있고 삽·괭이 등 농기구나 곡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으며 축사나 소여물 같은 영농의 필수시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 농촌울 안에서 볼 수 있었던 감나무·대추나무 대신 향나무 등 관상수를 심고 바닥은 시멘트로 포장, 정취마저 없어졌다고 말한다.

<냉방서 겨울 보내>
전북 옥구군 대야면 접산리 이장 이창욱씨(37)는 전 같으면 가구 당 1마리 꼴로 길렀던 소와 2∼3마리씩 있던 돼지가 취락구조개선사업을 하면서 돈사나 외양간을 짓지 않아 그 수가 훨씬 줄었고 닭조차 구경하기 힘들다고 했다.
북제주군이 81년에 추진한 문화복지마을 취락구조사업은 주택개량 20동 중 태양열 주택이 절반으로 이색적.
송인숙씨(30·여·북제주군 애월읍 동책리632의6)는 군 당국이 『제주는 겨울이 따뜻하기 때문에 태양열 주택을 지으면 좋다』는 권장에 따라 태양열주택을 지었다가 한겨울을 냉방 속에서 지내야만했다.
송씨는 건축비 단가는 일반주택보다 5만∼6만원이 더 들었으나 겨울 일조량이 모자라 난방이 거의 안 되는 데다 시공방법이 달라 수리를 하려면 특수기술자를 불러야하는 등 관의 무턱댄 권장만을 믿었다가 멍들었다고 원망했다.
아직도 숱한 시행착오 속에 많은 결점을 안고있는 농촌의 개량주택이 유독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봉명4리 「외동촌마을」. 경부고속도로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전시효과 마을이다.
79년 봄에 완공된 20채의 개량주택은 속을 들여다보면 그 절반인 10채가 주인이 다르다.

<투기꾼 손에 놀아>
주택개량사업은 해야겠고 돈이 없는 농촌주민의 명의를 빌어 서울사람들이 지은 집들이다.
수도권지역에 가까울수록 이런 현상은 일고있다. 때문에 집을 지어놓고도 입주자가 없게되자 말썽을 우려한 당국은 압수으름장을 놓았고 집주인들은 부랴부랴 현지주민들에게 무료임대를 해주고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면 직원 모씨가 서울사람 소유의 집을 돌봐주고 있다고 귀띔.
배희율씨(43)는 『빈 집을 면 직원이 봐달라고 해 79년 12월 오산에서 전세금을 빼내 이사, 내장공사·보일러공사를 해서 살고있는데 요즘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독촉, 걱정이다』고 했다.
서울근교의 농촌개량주택은 농촌주민을 떠나 도시의 투기꾼들 손에서 놀고있는 것이다.
지난 76년 첫 사업을 시작한 이래 83년 말 현재 개량된 주택수는 14만2천9백7동.
행정문제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공과를 놓고 낙후됐던 농어촌주민들의 생활환경개선과 새로운 주거환경에 대한 성취의욕을 심어주고 도농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정부의 투자의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햇수로 8년. 지금쯤은 지역적 특성·기반공급시설의 확보와 함께 눈에 보이는 「브리핑용 개량사업」을 떠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의 퇴락주택·낙후취락의 개선에 역점을 두어야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농촌주택 개량사업이야말로 물량적 성과보다 질적 결실을 노려야할 시기인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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