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있는책읽기] 말 속에 깃든 권위의 허울 벗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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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런데 내 힘만으로는 내 권위를 증명할 수가 없다. '나는 권위자이니까, 나에게는 권위가 있다'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므로 부당하다. 권위는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인정해주어야만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허울 좋은 권위와 참다운 권위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권력으로 권위를 얻을 수 있을까?

'작은 책방'(엘리너 파전 글, 햇살과 나무꾼 옮김, 길벗어린이)은 찬란한 고전으로 꼽히는 단편동화집이다. 갖가지 부당한 권위에 도전하는 씩씩한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 가운데 '보리와 임금님'은 이집트 왕 '라'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 소년의 호연지기를 그리고 있다. 소년은 아버지가 땀 흘려 키운 보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라' 임금은 자신보다도 보리가 더 위대하다는 소년의 말에 격분해 보리밭을 태워버린다. 세월이 흐르고 '라' 임금은 사라지지만 소년의 보리 씨앗은 황금빛 보리밭으로 되살아난다.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르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했던 '라' 임금은 어린 소년의 마음 한 자락조차 얻지 못했다. 소년에게 진정으로 권위 있는 것은 아버지의 성실한 노동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런가 하면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거나 의지하는 것도 어리석다. 또 우리는 논술문을 쓰면서 종종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름난 전문가라는 이유로 엉뚱한 분야에서 그의 의견을 인용하거나 유명 검색창에 오른 글이라고 무턱대고 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이비 권위의 숲에서 참다운 권위를 가려내려면 밝은 눈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임금 앞에서도 당당했던 보리밭 소년처럼 말이다.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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