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 2005년에도 나타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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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연말이 다가오면서 전주시민들은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 모르는 독지가의 출현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주시 완산구 중노2동사무소에는 2000년부터 매년 이맘때면 몰래 이웃돕기 성금을 내놓고 사라지는 기부의 손길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릴레이 기부의 물꼬를 튼 것은 '꼬마 천사'. 2000년 12월 중순 초등학교 3학년쯤 되는 어린이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민원실에 현금 58만4000원이 든 저금통을 놓고 갔다.

이듬해 12월에는 20~30대 여성이 74만2800원을 놓고 갔다. 그녀는 "누구인지 가르쳐 달라"는 공무원의 질문에 "이런 일을 하는데 굳이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사라졌다.

2002년에는 "동사무소 앞 공중전화 부스에 성금이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부스에는 현금 100만원과 61만2000원이 든 저금통이 놓여 있었다.

2003년 12월에는 현금 500만원과 36만 7330원이 든 저금통이, 지난해 12월에는 현금 500만원과 45만8420원이 든 저금통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발견됐다. 일부는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해 확인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숨은 선행자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지적이 있어 그만뒀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선행자들이 일가족일 것으로 보고 있다. 2002년 이후 뭉칫돈 기증자는 전화 목소리 등을 감안할 때 40~50대의 동일한 남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는 궁금증이 더 커지고 있다. '얼굴없는 천사'가 그동안 다녀 간 중노2동 사무소가 8월 노송동사무소로 통합돼 현재 사무실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정경옥(57) 노송동 동장은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꼭 나타나 거듭되는 폭설로 우울한 세밑을 촛불처럼 밝히는 훈훈한 소식을 전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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