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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도전<12>정구영 비망록 12월 민정이양, 당안으로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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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3·l6군정연장선언은 5·16주체를 빼곤 누구도 원치않는 사태였다.
다만 공화당만은 딜레마였다.
민간출신들은「정당정치회복을 내걸고 출발한 공화당이 정당정치를 거부하는 군정연장을 어떻게 찬성할수 있느냐」고 했지만 군출신들은「공화당은 박의장을 지지해야만 딛고 설 땅이있다」고 했다.
주체들은 당무회의를 통해 군정연장 지지를 결의하고 정구영총재더러 그 뜻을 밝히라고 했다.
정구영은 이 압력을 극복해냈다.
그 얘기.
『주체들은 조르고 난 못한다고 버티고 .사흘을 버티는데 군출신 당무위원 한사람-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지. 그가 총재실에 들어와서 마루창을 구르고 책상을두들기면서<왜 총재님은 당무회의 의견을 존중안하시오> 흥분해서 날뛰는데 감당할 도리가 없어. 아주 성미가 불같은 사람이지. 그래내가 허허 웃으면서<그러지말고 형들 나하고 여기서 공적으로 회합만했지 사적으로 얘기한일이 없어. 오늘 저녁에 내집이 누추해서 와있기가 어렵겠지만.> 내가 그날 군정연장이 옳다는 강경파 8명을 지명해 집으로 불렀어. 좁으니까 툇마루에도 앉고해서 얘기를 했지.

<당 연장지지파 무마>
나는 그들에게 내가 공화당에 발을 디디게된 심정을 장황하게 설명했어. <초기에 윤보선군이나 이상철군이 나한테 야당연합전선 얘기를 할적에 거기에 참여안한 것은 이미 2년동안 혁명정부가 정치한것을 현실화시키고 혁명의 뒤처리를 스무드하게해서 참된 민정으로 환원시킨다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런 점에서 박의장이 출마해 선거에 의해 당선되어도 좋고 당선 못되더라도 여러분들도 후회가 없을거요.
그런 타협적인 의도로 내가 공화당에 참여했던거요. 그런 내가 군정연장에 찬성을 해. 그건 있을수 없는 일이야. 내가 공화당에 밥을 얻어먹으려고 들어온것도 아니고 자리가 탐나서 들어온것도 아니야. 이것을 이해 못하고 형들이 와서 마루창을 구르고 책상을 두들긴다고 내가 복종할 사람으로 아느냐 .난 법률가야. 42년간 법률생활을 했어. 내 말이 끝내 이해가 안간다면 법대로 하자. 내가 당무회의 결의를 비토하겠소. 지금까지 이 말을 안한것은 나의 의도를 알아달라는것이었지 찬성해서가 아니야. 당신네들이 기어이 나한테 이를 강요하겠다면 내가 비토를 할테니 재론해서 3분의2 찬성으로 재의결할수는 있을거야. 제의에 붙여 부결되면 다행이고 가결되면 그때 나로서 취할방침이 있소. 깨끗하게 총재직을 사임하고 탈당을 할거야. 그러니형들이알아서하시오>내가 그렇게 얘기를했어. 내딴은 비장한 각오였지. 그러고서야 조용해졌어』
이렇게 돼 박의장은 군정연장에 대한 공화당의 지지를 끌어내는것마저도 실패했다.
미국은 원조중단으로 압력을 가중시켰다.
야당은 윤보선과 허정의 시청앞 산책데모를 신호로 전면투쟁을 채비했다.
박의장은 재야지도자와 대화를 갖기도했다.
그때있었던 재야세력을 대표한 윤보선·이범석·장택상·김도연·김준연과 최고회의 당국과의 대화에서 한마디씩만을 추려보자.
▲윤보번=여러분의 애국심을믿는다. 박의장은 3·16성명을거두고 민정이양을 하라.
▲홍종철최고위원=애국애족하는 정치리더에게 현정치정세에대해 묻고 싶다 .이승만박사추대정당까지 나오는판인데…..
▲김희덕최고위원=정계의 혼란 쿠데타사건 군인데모등으로 민심은 극도로 혼란하다. 이대로 민정이양할수는 없다.
▲유양수최고위원=국민이 잘살수 있는길이라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취해야 한다. 박의장이 물러나면 안된다는 국민도있다. 어떤 산업인은 모정당에서 돈을 내라고하여 일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장택상=백성이 잘 살기만한다면 어떠한 제도라도 좋다는건 국시와 거리가 멀다. 이말이 한 군인의 신조라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 공산당도, 군사통치를 하는 나라들도 모두 말로는 국민을 잘살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박의장=2·27선서를 하고10여일 밖에 안돼서 정책을 변경했으니 신의가 없다고 한 말 참으로 뼈아픈 얘기다. 박정희개인이 편하려면 그만두는것이좋다. 그렇지만 장래 일이 뻔한데 어떻게 하겠는가. 과거의때묻고 지탄받는 정치인들이 자진해서 정계에 안나온다면 결심을 변경하겠다.

<〃나 아니면…〃무리>
▲윤보선=이대로는 걱정된다니 이해할수 없다.
나 아니면, 또는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말에서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또 때묻고 안묻고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논쟁은 평행이었다.
그날 2시간의 지리한 담판후 헤어지면서 박의장은 윤전대통령의 손을 잡고<사심은 없습니다. 이점 알아주셔야지요>라고 했고 윤씨도 웃는 낯으로 <잘 압니다>라고했다.
박의장이 이범석씨와 작별하면서<사냥에서 다치셨다지요. 몸조심하셔야지요>라고 문안하자 이씨는 그말엔 대답않고<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결심을해 주시오>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고 박의장도 그런 이씨앞에 더 말을 못하고 얼굴이 붉어진채 자기방쪽으로 몸을 돌려 총총히 사라졌다.
회담은 얻은것이 없었다.
군정주체는 속셈을 덜어놓지 못했고 그탓인지 회담후 「구정치인들은 답답한 사람들」이라고했다.
정국은 대결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공화당총재 정구영은 매듭을 푸는 협상의 주역으로 나섰다.
중재안이 나오는 과정으로 옮아가자.

<백남억이 묘수 제안>
『박의장과의 담판이 쳇바퀴돌던 그런 1주일이 지난 어느날이야. 백남억이 찾아왔어. 대구대학법대학장·참의원을 지냈다는 정도를 알뿐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던때야. 그가 와선 <총재님, 헌법부칙을 보셨읍니까>하는 얘기야. <아니오, 부칙에 무엇이 있읍니까>그랬더니<부칙을 좀 보십시오. 애쓴다는것 알고 있는데 거기 무슨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부칙을 보니까 군사혁명정부는 63년12월31일까지 존속할수 있다>고 되어있어. 그러니까 민정이양은 63년12월31일 이전에 하면 헌법에 위배안돼.
거기서 힌트를 얻었지. 아차 이사람 법대교수하던 사람이니까 이걸 봤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8·15정권 이양을 연기하는것 아니오.
-그렇습니다. 국면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맙소.
8·15정권 이양이라면 6월에 대통령선거, 7월에 국회의원선거를 해야하니 두달밖에 여유가 없어. 시간여유만 있다면 일이 긴박하게 되지않을수도 있다는 판단이 나와. 그래 김정렬당의장을 오라해서 의논을 했지.
2·27 불출마성명이 문제다. 그러나 2·27선서도 취소시키고동시에 최고회의는3·16군정연장을 철회케하자.
2·27과3·16을 맞비겨 떨어뜨리자. 그리고 시간의여유를 갖기위해 8·15민정이양을 12월 민정이양으로 대체하자.
내가 이런 안을 냈어요. 김정렬은<그거 참 좋은 제안입니다. 그것으로 노력해봅시다.>
그래 둘이서 합의를하고 이튿날 식전에 윤보선에게 전화를 걸었어. 만나서 의논할일이 있다고했더니 좋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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