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태 이렇게 커질줄 미처몰랐다|「두서」사건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태풍이 일과한 느낌입니다, 진정서사건은 이제 이것으로 끝난 셈인가요.
-한쪽은 의원직과 당적을 다버리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고 다른 한쪽도 공개사과에다 정치청산 선언을 했으니 투서사건 자체는 일단 마무리 된 셈이죠.
-그러나 사건의 정치적파장이나 의미는 지금부터라도 잘따져 볼 필요가있죠.
-마치 초상집분위기같던 민정당은 이정도로나마 수습돼 정치적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원인행위가 말소됐으니 신문도 더이상은 쓸게 없지않겠느냐고 그러더군요.

<앞을 보는눈 필요>
-그건 여당의 희망사항일테고 여론은 아직 그렇지 않아요. 우선 정내혁씨의 축재의혹이 규명되지 않고 있잖아요.
-개복도 채 해보기전에 정치적으로 덮었으니까 말이 많은건 당연하죠.
-야당으로서는 이문제를 계속 물고늘어져 선거에 이용하고싶은 심산도 있겠죠.
-그건 좀 앞뒤가 안맞는데요. 야당의 경우 처음부터 목청을 높여 정치공세를 벌일 의지가 없었던것 아닙니까.
-오히려 목적을 돋우었다가 자기들한테 불똥이 튀는 「부머랭현상」 을 겁내는 측면이 강했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등록재산공개등의 공직자윤리법개정을 가성적 소격으로 거론하는 정도가 아니겠어요.
-그런 식의 당리당략적 시각보다는 여야가 좀 더 눈을크게 떠서 이번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정치인들은 이번 일로 저주와 국민간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할 픽요가 있읍니다.
-정치인들이 마이크만 잡으면 그렇게 비난해 마지않던 불노소득이나 떳떳지 못한 축재가 그들 스스로의 영역에서 일어났는데도 치부를 은폐하거나 적어도 너무 안이하게 처리하려한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읍니다.
-정치를 의 수단으로 삼고있는것이 안니냐는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정치인들이 회답을 주어야 합니다.
-투서는 지난16일께 민정당으로 맨먼저 들어왔지만 그동안 괴문서로 시달리다보니 불감증에 걸린탓인지 초기대응을 제대로 못했던것 같아요.

<정씨는 한때 태연>
-투서가 신문사로 오고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민정당이 이때 취한 조치라는것이 정씨의 출입기자에 대한 해형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좋지않았어요.
-이렇게 큰 문제가 될줄은 당도 정씨자신도 그때는 생각하지못했죠. 또 정씨가 재산등록은 정직하게 했다는데 안도하는 측면도 있었고….
-그러나 액수가 어디 보통액수라야죠. 정씨가 아무리 노른자위 공직에 오래있었다고하지만 1백억대 재산이란 설명이안돼요.
-큰 말썽이 될게 뻔해지자 정씨의대표위원추진조치가 나왔는데 이때도 당과 정씨 자신은 아직 「춘몽」 이었다고 할까요.
-정씨의 당직사임을 발표하면서 민정당은 문씨의 행위를 비겁한 짓이라고 몰아붙였지만 정씨의 축재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않는다고 했고 정씨의 의원직은 제3자가 왈가왈부할 성질이 아니라는 한가한 자세였읍니다.
그러나 이무렴 당내에서는 많은 의원들이 정씨의 재산이 상식으로 납득키 어려울 정도로많다고 지적하면서 당이 정씨를 일방적으로 감싸는것은 위험하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소장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문제수습을 의원직 사퇴선까지 확대시킬것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했어요.

<사임하기를 바라]
-당간부들도 사실은 내심 정씨가 의원직사임쪽으로 가주기를 은근히 바랐던것아닙니까.
-그러나 정씨의 태도는 한동안 완강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정한 짓은 하지않았다는거죠.
-정씨의 태도는 28일에 바꿔었습니다. 이날 평소 가까왔던 최영철의원을 불러 모든걸 끝냈죠.
-최의원으로부터 정씨의 결심을 전해들은 이종찬총무는 자정이 넘은시간이었지만 권익현대표에게 달려가 상황을 알렸고 그래서 29일 아침 부랴부랴 중집위가 알리게됐죠.
-어쨌든 민정당은 처음의 대책방향설정이 나빠서 뒤뚱거렸어요.
-야당은 반면에 「강건너 불구경」식으로 즐기기만 했죠.
-가만히 있으면 여당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까지 나설필요가 어디있느냐는「안주」 의식이지요.
-큰 문제가 있을땐 정작 민심에 등을 돌려버리고 마는 피조 야당의 속성때문이기도 해요.
-그 뻔질나게 요구하던 조사소위구성이나 징계요구쯤 야당으로서는 제기할뻔 했는데도 어쩐일인지 입을 봉한채 있더군요
-11대 국회의원들중에는 여야간에 겸직의원도 많고 돈많은 의원들도 많아 은근히 겁을 낸것 아닙니까.

<보안성공한 수사>
-검찰이 문씨의 신병을 인수한것은 26일하오7시쯤 이었읍니다만 검찰은 이미 그전에 사건을 맡게될것으로 판단했다더군요.
사전검토와 수사준비등이 충분해 신병을 받는 즉시 본격조사에 들어갈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번 사건수사의 보안조치때문에 취재에 크게 애를 먹었읍니다.
사건을 마무리지은 29일하오에도 「수사비화함구령」 까지 내려 수사검사는 물론 수사관타이피스트들까지 무조건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어요.
조사책임자였던 이건개서울지검공안부장은『보안에 성공한 수사였다』 며 기자들에게 약을 올리더군요.
-검찰이 이번사건에서 가장 언짢아하는 것은 삼청동 별관이 공개된 부분이예요. 보안을유지해야하는 수사때마다 적절히 잘 이용해왔는데 그만 노출돼 버린거죠. 비밀보장이 가장 잘되는 곳으로 믿었던 「안가」 에 일부 기자들이 들어가 옥상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올정도로 노출됐으니말입니다.
-보안수사중에도 윤만덕씨를비롯, 문씨 이외 관련자들의 명단과 각자의 역할을 알아내「투서사건계보」를 특종한것은 중앙일보의 개가였어요.
검찰은 지금까지도 윤씨등에 대해선 일체 설명이 없어요.
-이번사건을 대검중앙수사부가 아닌 서울지검에서, 특수부가 아닌 공안부가 말을때부터「확대」 가 아닌 「축소」 를 지향할것이며 역시 「법적차원」 보다는 「정치적차원」 에서 마무리될것은 예상됐었죠.
「처단적기능」의 특수부가 알았다면 착수단계에서부터 사실확인을 위해서도 정씨 소환이 전제됐을것이라고 어느 검사가 말하더군요.
-이러한 이유때문에 사실상의 조사는 착수 첫날밤의 철야심문으로 일단계 마무리됐어요. 수사진들은 다음날부터 비교적 느긋한 표정을 지은반면 간부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그날부터 더 활발하게 눈에 띄었어요.
-그러나 민정당을 비롯한 다른기관에선 문씨 처벌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후문입니다.
무고·모해·투서풍토는 불식돼야한다는 것이죠.
-엄벌주장 일변도의 분위기에서 끝까지 신중론을 관철시킨점에대해 검찰자체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당에도 항의빗발>
-조사과정에서 문씨에 대해명예훼손 혐의부분만을 적용키로 결정했죠.
물론 무고부분도적용할수는 있었지만 이는 진정서 내용중 「외화유출」 「증수뢰」 등 일반형사범죄에 해당되는 부분의 투서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밝혀야되나 이는 확증이 필요하고 수사기간이 길어지는등 문제점이 많아 명예훼손쪽만 적용키로 했다는 설명입니다.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므로 「처별」 또는 「공소권없음」 등 어느쪽으로도 몰고갈수 있다는 잇점이 있는거죠.
-김총장의 최종보고후 「2∼3일 더수사해야」 의 의미는 바로 「처벌불원」 의사를 정씨로부터 받아내는 시간이었답니다.
-정씨를 만난것은 이건개부장이었죠.이부장은 두 번 다 정씨집을찾아가 만났으면서도 애써 『모처에서 만났다』 고 하더군요.
-여담입니다만 이부장은 문씨와 정씨를 어릴때부터 알고지낸 사이라는군요. 모두 군장성출신인 문·정씨는 이부장선친인 이룡문장군과 상하관계였답니다.
-검찰이 수사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것은 들끓는 여론이었답니다. 특히「정씨 축재를밝혀라」 「진정인을 처벌하고 피진정인은 조사하지 않느냐」 는 국민의 열화같은 법감정 때문에 몹시 고심했다는 설명입니다.
신문사와 민정당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었거든요.
-28일 하오9시쯤 대검엔 서울시대학생서클대표회의 회장을 자칭하는 사람이 「정씨의 축재부분을 수사하지 않은채 문씨만 구속할경우 사제폭발물 2개로 별관을 폭파하겠다」 고 위협전화를 걸어와 검찰은 한때 긴장하기도 했죠. 검찰은 치안본부에 특별경계를 요청하기도했어요.
-대검은 여론을 몹시 의식한듯 각지방검찰청에 지시, 수시로 여론을 수집토록 했어요. 분석결과는 문씨처벌보다 정씨축재에 대한 조사요망이 더많았다는 귀띔입니다.
-정씨소유의 부동산 6필지가 몰려있는 서울역삼동682일대 주민들은 이땅들이 정씨의 부인 주숙씨와 2남, 3남의 멍의로 돼있었지만 사건이나기전부터 정씨소유라는 것을알고 있었읍니다.
특히 정보가 빠른 부동산업자들은 77년 정씨가 이땅을 매입할때부터 알고있었고 당시에도 주변일대에는 「장군의 땅」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는 겁니다.
-정씨가 살고있는 경기도시여군과천면주암1이에는 서울에서나 볼수있는 최고급주택 11채가 있는데 그곳 집주인들이 누구라면 금방 알정도의 쟁쟁한 인사들이었읍니다.

<문씨의 집은 여유>
-정씨집이 굳게 문을 닫은것과는 대조적으로 문씨집은 비교적 출입이 수월했습니다. 문씨가 조사를 받으며 집을 비운 4박5일동안 문씨집을 지킨 부인 손춘자씨 (56) 는 『남편의 진심을 믿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며 시종 여유있는 태도였지요.
-부인 손씨는 투서사건에 대해선 전혀 언급을 피하면서도 투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윤만덕씨에 대해서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더군요.
-문씨집엔 지역구민과 친지들로부터 안부문의전화가 빗발쳤지요. 29일엔 익명의 시민으로부터 「정의·횃불 영원 불멸」이란 격려전보가 날아와 세간의 여론을 반영하기도 했지요.
-문씨는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기로 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그런 말을 한척도, 생각해본적도 없다』 며 일축했고 부인 손씨도 『우리가 뭣때문에 재산을 내놓느냐』 며 펄쩍 뛰더군요.
-문씨는 사과문을 작성한 동기에 대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태수습을 위해 스스로 제의했다』 고 밝혔으나 투서 작성경위등에 대해선 『제발 더 묻지 않는것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며 묘하게 말꼬리를 돌리더군요. 다만 투서를작성하는데 한달도 안걸렸고 외부기관의 도움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히 하더군요.
-여하튼 정치적인 수습책이라고 하지만 앞뒤가 안맞는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검찰은 정씨 축재에 범법단서는 전혀 발견할수 없었다고 했고 정씨자신도 자기가 부정을 한일은 맹세코 없었다고했는데 그렇다면 의원직은 왜버리고 재산은 왜 사회에 환원합니까.
-사법적으로 가릴 일을 정치적으로 얼버무리다보니 어색한 점도 많아요. 정씨의 의원직 사퇴나 재산의 사회환원이란 개인적 결심과 문씨의 사과문발표와 공직포기가 그렇게 똑같은 시간에 결심이 이뤄졌는지….
-그러니까 이런수습책이 자발적이 아니라 유도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되죠.
-축재말썽을 걸핏하면 「사회환원」 이란 방식으로 해결하곤하는데 이것도 문제예요. 축재과정의 비리개재여부를 따지지않고 지극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회환원」 으로 문제를 덮어서야 국민의혹이 씻어질수 없읍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권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사회환원」 이란 방식은 문체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결심으로 공익을 위해 기부를 한다거나 희사하는것은 미덕일는지모르지만 그런 미덕을 타율로 강제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서는 곤란합니다.
-또 부정축재가 사회환원으로 면죄돼서는 안되죠.

<두서 90%가 무고>
-재산의 사회환원이 문제해결의 명약일수는 없을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이런 발상은 아예 배제돼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이면 재산등록해서무슨 소용있습니까. 등록했으면 그뒤의 재산만 문제돼야죠.
-투서등에 의한 음해 (음해)행위의 부도덕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지요.
80년 국보위에 밀려들었던 투서의 90%가 무고로 밝혀졌고 지난해 전국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사건중 32%가 무혐의로처리됐다는 통계에서 나타나듯이 음해행위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법리현상으로 지적되고있읍니다.
투서·중상모략·무고·밀고·매터도어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음해행위는 피해자인 상대방에게 엄청난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안겨주고 관련기관의 인력낭비를 초래하는등 국가와 사회에 주는 피해가 크지요.
-이번 사건은 민정당으로서는 아마도 보통 아팠던게 아니죠.

<호남에 먹칠했다>
-현지에서는 「호남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두사람을 한꺼번에 잃었다」 는 두가지 반응이더군요.
-주민들의 배반감도 무시못해요. 「믿고 키워주었는데 결과가 이꼴이냐」 하는 분노들이었어요.
-여당의원들 가운데는 『당분간지역구에도 못내려가겠다』 , 『조기선거는 죽어도 못하게됐다』고 울상을 짓는 표정이예요.
-현지에 가니『88고속도로로 얻은 표 다 날아갔다』 고 하는 민정당원도 있더군요.
-어쨌든 민정당표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사건으로 많이 달아났다고봐도 틀림없을거예요.
-투서나 모해행위에 경종을 올린 면도 있지않을까요. 역설적으로 투서를 할사람도, 대상이 될사람들도 다같이 「나도 당할지 모른다」는 몸조심도 있을법해요.
-지역구에서 라이벌과 대치한 모의원은 『정적관리를 각별히 잘해야 되겠다』 고 가슴을쏠더군요.

<공천자료 삼을듯>
-여당은 앞으로의 공천과정에서겸경직공천문제등에 상당한반성자료가 될수도 있을것같습니다.
-국회의원직을 이용해 번돈을 지키거나 늘리려는 사람들한테도 경각심을 주었을것같습니다.
-호남의 대표주자가 도중하차했으니 상대적으로 진의종총리는 장수가 보장되는 셈인가요.
-민정당의총에서는「군중재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지요.
-민정당은 그러나 민심을 정확히 볼 필요가 있어요. 힘있는 사람, 돈있는 사람이 갖가지 추태를 보이는데 대해 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신차려 살퍼야 할겁니다.
-고위 공직자의 치부사실로 왜곡된 분배문제가 다시 한번클로스업 되었고 이문제는 아직도 과정의 적법성둥 여력의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요. <정리=유균 기자 허남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