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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농민들「서양소」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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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뭐, 병든 소가 한마리도 없었다구요. 장관이란 사람이 그렇게 물정을 모르니 이 모양이 될수밖에요. 알고도 거짓말을 했다면 더 말할것도없어요.』
안동운씨 (47·경기도화성군태안면안영1리)는 분통이 터지는 표정으로 숨소리까지 거칠어졌다.
그도 그럴수밖에, 「병든소」때문에 요즘 안씨 자신이 병이 날 지경인 것이다.
「외국서 들여오는 고깃소(내우)를 길러 팔면 수지가 맞는다」는 이웃의 말만듣고 안씨가 무리를해서 소를 분양받은것이 지난해 6월.
축협을 통해 도입육우 샤를레 암놈 4마리를 마리당 1백만원씩 4빽만원에 들여왔다. 몸무게 1백90∼2백20kg짜리 중소. 1마리 1백만원중 40만원은 자기부담, 60만원은 축산진흥기를 융자니까 4마리에 2백40만원 융자빚 (3년거치 2년균분 상환)을 안고 자기돈 1백60만원이 들었다.

<깨진 금송아지꿈>
금송아지라도 맞은양 했던 기쁨과 기대도 잠시, 안씨의 도입소는 금세 걱정거리가 되고 말았다.
첫날부터 낯가림(?)을 하고 잘 먹지 않던 서양소는 한달·두달이 지나도 안씨집에 정을 붙이려 하지않고 신정질만 부렸다.
6개월만인 지난해 12월, 시름시름하던 1마리가 끝내죽었다. 폐렴.
1마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정할 생각조차 안한다. 1마리는 다행히 발정을 해 수정을 시도했으나 8번이나 실패, 안씨는 아예 수태불능의 「우녀」로 포기해버렸다. 한번에3만원씩 발정주사비용 24만원만 날렸다.
1마리만이 현재새끼를 뱄다. 안씨가 더욱 어이없어 하는것은 명색이 고깃소라는 놈이 새끼를 밴놈이나 안밴놈이나 도무지 자라지를 않는 것이다. 사올때 1백90kg짜리가 1년만인 현재 겨우 2백20kg남짓. 시세가 50만∼60만원.
『1년동안 우리가족 인건비는 빼고라도 사료값·약값등 현재로서 1마리 1백만원씩은 밑져있다』며『소키워 돈을 벌기는커녕 축협빚만 걸머지게됐다』 고 안씨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부병에 설사도>
경남창령군대지면귀동 성기준씨(43)-. 지난해 11월 도임우 4마리를 분양받았다가 지난4월 그중 1마리가폐사했다 남은 3마리도 전신에 붉은 반점이 돋고 진물이 나는등 악성 피부병에 설사까지 경쳐 발육정지 상태. 성씨는 아침저녁 추한몰골의 도입소를 볼때마다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같은마을 박종대씨(45)도 성씨와 함께 암소2마리를 분양받아 길렀으나 생후 13개월이 지나도 발정을 않자 지난달25일 6개월분 축협융자금 이자 6만4천7백원을 물면서 『소를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축협측이『계통출하로 손해보지않게 소값을 받아주겠다』 는 바람에 축협처사만 바라보고 있으나 소값이 오를 기미는 아직 없다.
전국의 축산농가가「도입소」 몸살을 앓는다.

<″앓는 소 더많다″>
잇단 몌사· 발병·수태불능·발육부진에다 값폭락….
거의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축산파동의 84년판인 「병든소 소동」은 장관의 국회위증시비까지 곁들여 축산농가의 분통을 한껏 자극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축산농업을 자극하면서 더욱 어렵게 하고있다.
농수산부는 지난달 국회에 낸 자료에서 작년이후 도입한7만4천1백64마리 육우가운데▲3· 3%인 2천4백47마리가 폐사▲2·8%인 2천97마리가 도태돼 전체적으로 6· 1%인 4천5백44마리가 죽거나 도살됐으며 그중 농가에 넘겨진뒤 폐사·도태된것은 1천6백80마리라고 밝혔다. 폐사는 각종 질병으로 죽은 경우, 도태는 질병·부상등으로 사육할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 도살한 경우다.
그중에도 지난해 한여름(7∼8월) 에 도입한 소들이 폐사율12· 8%로 가장 높았다.
장거리수송(60∼90일)에 따르는 피로, 스트레스도 문제였지만 애초 수입과정에서 검역소홀로 「병든소」「허약소」까지 끼여들어온 사실을 당국도 뒤늦게 시인했다.
국내 검역소에서 전염병 이환이 발견돼 도살· 매장한 숫자가 66마리.
그러나 실제론 더많은 소들이 감염·허약상태었던것으로 농민들은 믿고있다.
전남나주군의 경우 지난해4백89마리 도입육우를 농가에 넘긴뒤 재조사결과▲폐렴13마리▲눈병13마리 ▲피부병43마리등 76마리가 각종 병에 걸린것을 밝혀냈다.
그중 58마리는 치료를 받고 낫으나 3마리는 끝내 죽었고 15마리는 미리 도살을 해 고기로 팔았다.

<입짧아 식빵까지>
소가 폐사할 경우 입식6개월이내면 축협에서 공제사업으로 60만원까지 보상을 해주기는 하나 소를 살때 빌은 축협빚은 그대로 축산농가가 질수밖에 없다. 그나마 6개월이 지나면 보상도 제대로 못받는다.
경남창령군영산면성내리 윤정원씨(28)가 사육중인 도입육우 3마리는 생후1년이 됐으나 몸무게가 1백80kg. 7개월된 한우 1백50kg짜리와 덩치는 비슷해 윤씨는『이놈이 과연 그렇게 성장이 빠르다는 서양 고깃소인가 의심스럽다』 고 했다.
『하도 뭘 안먹어 식빵까지 사다먹었는데 이모양 아닙니꺼.』 윤씨는 요즘도 도입소 식성맞추기에 고심이다.
전남해남군옥천면송산리 최광식씨 (28) 는 지난해 분양받은 도입소의 덩치가 한우보다도 작아 「난장이소」 라고 이름붙였다.
지난달2일 새끼를 낳았는데 역시 한우송아지보다 작은「난장이」송아지. 우람한 서양고깃소만 생각했던 최씨는 난장이 서양고깃소에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분이다. 귤도 양자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꼴이다.
이처럼 도입소들의 성장이 불량한 가장 큰 원인은 사육환경에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또 농가의 사육기술부족도 원인이다.
광활한 초원에서 떼로 놓아먹이던 소들을 한 마리씩 고삐로 묶어 집에 가두어 기르니 제대로 자랄리가 없다.
경북상주군모서면화현리 이웅목씨 (46) 는 미국산 헤어포드20마리를 들여다 기르던 중 지난달 4마리가 목책을 박차고 달아나 1마리는 붙잡았으나 3마리는 여태-붙들지 못하고 있다.

<집나가 들소소동>
풀려난 3마리는 들소(?)가되어 떼지어다니며 40여일째 인근의 논·참깨밭·고추밭을 마구 짓밟고 무법자로 횡행하고 있다. 성질이 사나와 붙잡지도 못한다. 이씨는 경찰에 이를 사살해주도록 신고해 놓고있다.
이같은 사육상의 애로는 당국이 고깃소를 들여오면서 우리기후·풍토·사육여건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은데서 빚어진 것이다. 방목형 육우를 재래한우키우는 방식밖에 모르는 영세농민들에게 사전교육도 충분히 없이 맡긴탓으로 소도 고생, 농민도 고생만하고 정작 고기증산은 예상을 빗나가게 됐다.

<무계획 도입때문>
이는 수요판단을 잘못한 축산당국과 농민들의 부화뇌동(?)농업경영이 손뼉을 마주친 결과다.
지난해봄 소값이 가장 좋았을때 국내시세는 송아지1마리가 1백만∼1백10만원, 다자란 소는 1백60만∼1백70만원까지 거래됐다.
농민들은 수지가 맞는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소를 사들였고 송아지구하기가 어렵자 외국산소도입을 늘려주도록 요청했던것.
정확한 수요판단으로 이같은 과열사육에 제동을 걸었어야할 농수산부는 쇠고기공급만 늘리자는 안이한 생각에서 당초계획 5만마리에서 2만마리를늘려 7만마리의 육우를 미국등에서 수입해왔다.
이같은 무더기수입에서 「병든소」「허약소」등 「불량품」까지 끼여든 것이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분양경쟁을 활용, 아파트 채권입찰식 장사를 했다.
도입소를 원가에 팔지않고 최고40%까지 마진을 붙여 판 것. 40만∼50만원에 들여온 소가 농가에는 60만∼1백만원에 분양됐다.
물론 이는 당시의 높은소값을 고려해 책정한것이고 거둬진 차액은 축산진흥기금으로 적립, 축산진흥을 위한 정책자금으로 쓰고 있기는하다. 그러나 농민들에겐 그만큼 원가부담을 높인 셈이었다.

<사료값 30%뛰어>
한꺼번에 소가 늘어나자 사료값이 뛰기시작했다. 1년새30%. 소를 내다파는 농민이많아졌다. 이번엔 값이 떨어졌다. 지난해 가을부터 소값이 내림세로 기울자 가뜩이나 까다로운 도입소 사육에 애를 먹던 농민들이 더 떨어지기전에 팔자는 심리에서 방매하는 현상을 빚어 값하락을 부채질했다. 현재 도입육우는 중소1마리가 도입원가를 밑도는 50만∼60만원선. 그나마 살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2월 1백80Kg짜리를 마리당 76만원씩 8천3백50만원에 들여왔던 홍영희씨(55·전남 승주군노안면안산리)는 비교적 소를 잘키워 현재 3백kg짜리 큰소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세는 마리당 84만원선. 사료비등 경비를 계산하면 마리당 20만∼30만원이 적자라고 울상이다.
팔려해도 살사람이없어 밑지는 사육을 계속중이다.
홍씨 말고도 대부분의 분양농가가 현재 시세로 판다면 사육경비와 자기부담률을 회수하고 축협융자를(1마리평균 60만원꼴)만큼 고스란히 빚을 안게 된 상황이다. 지난해 들여온 7만마리면 전체 축산 농가의 빚이 어림잡아 4백20억원. 「농가 소득증대」 가「농가부채증대」로 끝나게 됐다.

<축산정책 전환을>
『쇠고기공급확대에만 초점을 맞춘 축산정책의 단견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쇠고기의 국내공급만 늘어나면 무엇합니까.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이 돼야지요. 축산에도 원가의 개념이 도입되고 기술혁신이 추진되지 않고서는 주기적인 파동의 악순환 뿐입니다』
대학강단에서「축산혁명」을 부르짖다 자기주장을 실천으로 보여주기위해 목장경영에 나선 강원도평창군도암면차정2리 「제일목장」 주인 김무남씨 (42·전관동대부교수)는 정부의 축산정책이 명확한 목표와 합리적인 전략, 과감한 실천의지를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김씨는 현재처럼 육우를 수입해다 역시 93%를 수입해오는 농후사료를 먹여 길러서는 타산이 맞을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농후사료를 주어서 기를경우 현재 시세로 계산, 1kg의 쇠고기를 생산하는데 9kg의 사료를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쇠고기자체를 수입하는편이 싸다고 김씨는 지적했다.
『쇠고기 국내공급을 늘리기위해 소를 들여오지말고 국내에 개발가능한 초지를 전제로 그에 맞춰 소사육을 늘려야해요. 돈이 거의 안들고 생산되는 목초로 소를 기를때만 우리축산이 경제성을 갖게될것이고 국민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김씨는 전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가운데 적어도 30%는 초지조성이 가능한 땅이라며 「병든소」 사건을 계기삼아 정책방향만 잘 세우면 소를 기르는 농가도 수지가 맞고 소비자도 싼값으로 쇠고기를 살수있으며 국내 쇠고기 소비를 안정적으로 자급한다는 정책목표도 달성될수 있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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