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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차원서 맴도는 선거법협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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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이 연막을 걷고 1구1∼3인제를 정식으로 내놓고부터 선거법협상은 눈에 띄게 뒤뚱거리고 있다. 민한당은 화풀이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선거구제를 들고 나왔고 민정당 역시 더 마음에 없으면서도 소선거구제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되받았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당략적 속셈을 별로 숨기려고도 않은 채 협상은 저차원에서 혼미중.
○…민정당측의 1구1∼3인제 관철의지는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것 같다.
한 당직자는 『1구1∼3인제는 인구비례를 반영한 합리적 안』이라며 『이번 협상에서 타결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선거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민정당의 당론』이라고 했다.
즉 일단은 밀어보되 야당의 반대가 극렬해서 협상결렬의 최악의 사태가 초래되면 12대국회로 넘길 수도 있다는 것.
인구 60만명이 넘는 3인구가 18개, 인구 30만명 미만의 1인구가 21개지만 12대 선거에는 3인구와 1인구를 다같이 5개미만으로 부분적으로만 실시해도 좋다는 게 민정당의 입장인 것 같다. 그렇다면 현행1구2인제를 고수하자는 민한당의 주장도 대부분 반영되는 셈이고 1구3인제를 내놓은 국민당안도 부분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
1구1∼3인제가 부분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지구는 현저한 인구과밀지구와 현저한 인구 과소지구다.
서울 동대문, 마포-용산, 도봉등 80만명 이상 3개구가 3인구로, 진안무주-장수, 달성-고령-성주, 남해-하동등 20만명 미만지역이 1인선출구가 될 제1의 후보지역인 셈.
민정당측은 앞으로도 생길 인구 불균형을 감안해 가능하면 이번 선거부터 1구1∼3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은 밀어본다는 방침임에 틀림없다.
민정당측은 1구3인제가 국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다. 대도시의 3인제구역에서는 다른 야권신당이 1석을 차지하거나 오히려 민한당이 복수공천으로 2석을 다 먹어 민정당측의 득표율 1위목표를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또 1구3인제가 사회주의 정당육성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한다. 한 소식통은 『어느 특정정당이나 특정후보 좋으라고 선거제도를 끼워맞출 때는 아니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민정당의 낙관적 전망과는 달리 현재까지의 민한당태도는 1구1∼3인제를 단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유치송총재는 『이번 선거만 잘 넘기면 민한당이 수권정당으로서 본궤도에 오를텐데 여당측이 민한당 팽창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못내 못마땅한 눈치.
앞으로의 3차 해금과 야권신당움직임에 가장 신경을 쓰는 유총재로서는 일단 민한당을 야권주도세력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장기포석아래 민한당에 유리한 1구2인제를 고수하고 싶은 심경. 그래서 유총재는 『소선거구제를 못할 것 없지 않느냐』는 당내의 감정적 반발을 만류하면서 선거법협상의 초점을 공명선거보장 쪽에만 맞출 작정. 따라서 자칫하면 선거구제 변경으로 비화될지 모르는 증·분구 문제는 앞으로 큰소리로 거론은 안할 심산이다.
결국 협상은 민정당측의 1구1∼3인제와 민한당측의 정당추천선관위원부활·선거인명부사본교부등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요구로 맞서는 양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인데 이를 해결하는 정치적 흥정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주목거리로 남은 셈이다.
○…1구1∼3인제가 처음 베일을 벗었을 때엔 상당수 민정당 간부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선거법협상을 위한 3당 사무총장의 2차 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19일 민정당 중집상위에서 권익현 사무총장이 『1구1∼3인제 안을 당안으로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서두를 떼고는 『선거법협상에서는 개인이익이 고려돼서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나의 선거구(산청-함양-거창)뿐만 아니라 정래혁 대표위원 구역(화순- 담양-곡성)도 1인구에 포함돼 있다』고 보고하자 정래혁 대표의 얼굴이 굳어지더라는 것.
「사견」「부언」등으로 연막을 피웠던 1구1∼3인제는 이날부터 민정당의 「당론」으로 격상됐는데 권총장과 이종찬 총무, 김용태 대변인등 극소수의 몇몇 당직자들만 내막을 알았을 뿐 정대표를 비롯한 대부분의 당직자들도 이 문제에서는 겉돈 셈.
1구1∼3인제가 처음부터 공론에 붙여졌다면 당내에서도 상당한 동요와 잡음이 있었을 것임에 비춰 당의 한 관계자는 『실력자인 권총장이 협상창구로 나선 이유를 이제야 알만하다』고 고개를 끄덕.
사실 민정당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안을 검토했는데 권총장 자신이 당내 율사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많이했고 당외에서도 아이디어의 제시가 있었다.
민정당측은 야당이 선거법협상에서 △지역구의 인구불균형 △전국구배분방식을 들고 나오면 논리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안이 마련됐다는 것. 민정당측은 이 안을 제기하면 튀어나올 야당측의 반응을 여러 각도로 가상해 도상연습까지 실시. 21일 김대변인이 야당의 『소선거구제안 수락용의』운운한 발표문도 도상연습했던 그대로였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야당측에서는 『여당측이 지나치게 고지점령 식으로 협상을 작전하듯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선거구문제로 서로 낯을 붉히면서도 여야가 당략적으로 배짱이 맞은 대목이 탈당자의 출마규제.
사실 따지고보면 탈당자의 출마규제는 당원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야당측에 더 절실한 문제다.
민정당의 한 당직자는 『야당측이 이 문제를 먼저 들고나올 명분이 없으니 민정당측이 후조정치인 규제라는 명분으로 강력하게 들고 나와달라고 하더라』고 흘리고 있다.
공천탈락자의 반발을 무마시킬 힘과 대안을 갖고있는 집권당으로서는 탈당자 규제를 서두를 필요는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정당으로서는 전국구후보자의 공천시기를 가급적 늦춰야한다는 절실한 필요를 갖고있다.
현행 선거법대로 전국구 후보를 6개월전에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면 『공천작업이 들통나고 당내에 진통이 올 것은 뻔하다』는 것. 따라서 야당측의 절실한 요구인 탈당자 규제에 앞장서 총대를 메어주는 대신 민정당의 고민도 해소하겠다는 것이 민정당측의 작전.
민한당으로서는 이미 해금입당자인 엄영달씨가 탈당한 만큼 앞으로 제2, 제3의 탈당자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소속만 기탁금인상 등으로 규제하면 『급조공천정당만 난립하게 만들고 이들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게 유총재의 지적.
거기에는 당내에서 공천탈락에 대비해 신당추진파와 줄을 대려는 의원까지 있으므로 이들을 『무소속으로는 내몰지언정 신당에는 가세하게 할 수 없다』는 의도가 깊숙이 깔린 것 같다. <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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