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천정배 "야권 판 새로 짜겠다" … 호남 신당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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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가 살아 돌아왔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서울 송파을에서 낙선한 지 3년 만에 5선 의원으로 국회에 재입성하게 됐다. 천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야권 분열의 단초가 됐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그러곤 ‘호남 정치 복원’과 ‘야당 심판론’을 주장하며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치연합을 공격했다. 문 대표도 광주 선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광주 서을 보궐선거는 사실상 ‘문재인 대 천정배’ 구도로 치러졌다. 두 거물 정치인이 ‘올인’하면서 4·29 재·보선은 여야 대결 못지않게 ‘야야(野野)’ 대결도 뜨거웠다. 결국 승자는 천 당선자였다.

 천 당선자는 29일 개표가 시작되기 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나타났다. 여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개표 한 시간도 안 돼 당선 소감을 돌렸다.

 그는 “광주 정치를 바꾸고 호남 정치를 살려내겠다. 야권을 전면 쇄신해 정권 교체의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오후 10시쯤 당선이 확실시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연합의 일당 지역 독점에 대해 유권자들이 회초리를 들었다. 이게 광주의 민심”이라며 “새롭게 야권의 판을 짜서 호남 정치를 살리고 정권 교체를 이뤄 내겠다”고 했다. 신당 창당 계획에 대해선 “아직 자세한 것을 이 자리에서 말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당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직격을 당한 새정치연합 핵심 당직자는 “광주 선거는 천정배 한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었다”며 “친노(親盧)에 반기를 든 천 당선자가 확보한 한 석은 대안 야당을 꿈꾸는 비노 세력의 교두보”라고 평가했다. 그는 “총선까지 가는 과정에서 이 한 석이 ‘신당론’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선거가 시작될 무렵 비공개 전략회의에서 “여건만 허락하면 선거운동의 절반 이상을 광주 서을에 쏟고 싶다”고 했다. 광주 서을을 천 당선자에게 내주면 어떤 후폭풍이 불어닥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거기간 동안 광주를 여섯 차례 방문했다. 4월 들어 1박2일 일정을 소화한 것만 네 차례다. 한 핵심 측근은 “문 대표는 ‘야권 분열의 씨앗’을 만들어선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며 “광주를 내주면 당이 다시 갈라질 수 있고, 그래선 절대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믿음이 강했으나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야권 분열의 조짐은 이미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 참배를 마친 동교동계 인사들은 “문 대표 체제의 선거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동교동계의 ‘반란’은 일주일 만에 수습됐지만 당내에선 “수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라설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새정치연합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은 “안타깝지만 광주에서 졌다는 건 당의 기반이 무너졌다는 뜻”이라며 “후보 경쟁력에서 완전히 밀렸다. 선거 내내 광주 선거의 중요성을 설득했지만 유권자들은 복잡한 정치함수보다 지역을 대표할 사람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이정희(정치학) 교수는 “천 당선자가 비중 있는 호남 정치인으로 부상하면서 ‘비노’ 세력의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강태화 기자, 광주=최경호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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