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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예술 놀이터 … 아이들 눈이 커졌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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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8일 전북 남원초 4학년 1반 어린이들이 통합예술교육을 받고 있다. 들고 있는 지도는 지난해 남원초 4학년생들이 만들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얘들아, 우리 오늘은 마을에 나가서 놀자. 어떻게 놀까…. 시간을 여행하듯 놀아볼까?”

 28일 전북 남원초 시청각실. ‘통합예술교육’ 수업을 받으러 모인 4학년 어린이 70여 명의 눈빛이 ‘놀자’는 말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날 강사로 무대에 오른 김성진 문화예술교육연구소 ‘보물상자’ 대표는 ‘시간여행’의 사례를 영상으로 보여줬다. 갓난아기가 사춘기 소녀로 클 때까지 12년 동안 매일 딸의 얼굴을 찍어 하나로 편집한 동영상, 전 세계를 여행하며 같은 동작의 춤을 추고 이를 영상으로 엮은 작품 등이다.

 “우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마을의 모습을 사진 찍어 영상으로 만들어보자. 오늘은 모둠 별로 상의해서 어디를 찍을지 결정해 보렴.” 강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술렁였다. 지난해 4학년이었던 선배들이 만든 ‘조산마을 이야기 지도’를 펼쳐들고 행선지를 정하느라 바빴다.

 남원초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주성혜)이 선정한 ‘예술꽃 새싹학교’다. 문화소외지역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해 아이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을 시키는 ‘예술꽃 씨앗학교’의 심화 프로그램이다. 4년 시한의 국고 지원을 받은 ‘…씨앗학교’ 중에서 지역사회의 문화 거점이 될 만한 학교를 뽑아 2년 동안 추가로 지원해준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새싹학교’는 모두 12곳. ‘…새싹학교’ 지원 예산은 신한은행이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부담하고 있다.

 남원초는 2011년 ‘…씨앗학교’로 지정돼 전교생을 대상으로 민요·사물놀이·연극·미술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매년 가을엔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에서 학부모·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발표회도 했다. 수준높은 예술교육을 시켜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교 인기도 높아졌다. 2011년 346명이었던 학생 수가 현재 438명으로 90여 명이나 늘었다. ‘…새싹학교’ 지원까지 받게 된 올해부터는 통합문화예술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4학년은 학교 주변 조산마을을 무대로 사진을 찍어 픽실레이션(움직이는 사진)과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고, 6학년은 인근 재래시장인 남원공설시장에서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에 어울리는 표지판·전단지 등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28일 조산마을에 흩어진 4학년 아이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며 올 한 해 동안 관찰할 대상을 찾았다. “목기 공장에 쌓여있는 나무를 관찰할 거예요. 목기를 많이 만들면 나무가 줄어들 텐데, 어떻게 되나 궁금해요”(양시준), “‘조산길 90’집에 붙어있는 문패가 1년 동안 얼마나 낡을지 관찰해볼래요”(김유정) 등 아이들의 시선은 의외의 장소에 오래 머물렀다. 2012년부터 남원초에서 예술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 최기춘 삼천문화의집 관장은 “예술의 눈으로 자기가 사는 마을을 관찰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아이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지역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함께 키운다”고 말했다.

남원=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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