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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수출 손발 되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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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분은 울워스 독일 본사 구매 책임자입니다. 저가 제품 위주니까 최대한 낮은 가격을 제시하세요." 춘계 소비재 박람회가 열린 지난 2월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내 가방 제조업체인 HHS무역의 유희용 사장은 KOTRA 무역관 양은영 과장의 귀띔에 바짝 긴장했다.

울워스(Woolworth)는 독일 내에만 3백여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영국에서도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는 대형 유통점이다. 울워스 구매 책임자는 전문가답게 부스에 전시한 2백~3백 종류의 가방 중 신제품만 골라냈다.

그는 견적표와 회사 소개서를 살펴본 뒤 "곧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바이어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이 닷새를 보내고 귀국한 柳 사장은 울워스에서 샘플을 보내달라는 반가운 팩스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놀랐다.

결국 박람회가 끝난 지 두달 만에 17가지 샘플 중 한 품목에 대해 2만개의 주문 계약을 체결했다. 柳사장은 "한국에서 낮에 연락하면 시차 때문에 현지에선 늦은 밤이나 새벽인데도 늘 웃음으로 대해준 KOTRA 직원들 덕에 쉽게 유럽 진출에 성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 콸랖룸푸르에서

경기도 용인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영농법인 우리배 작목반. 지사화 사업을 통해 말레이시아에 진출했다. 2001년 반신반의하며 KOTRA 문을 두드리자 콸라룸푸르 무역관의 정형식 차장이 나섰다.

그는 직접 과수원을 방문해 품질을 확인한 뒤 말레이시아 유명백화점인 소고의 구매담당자를 접촉, 홍보용 샘플로 1백 상자를 주문하도록 주선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백화점 측은 고객의 반응이 좋다며 1천6백상자(2만달러 어치)를 주문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한국산 배를 꾸준히 수입하고 있다.

우리배 작목반 김애란 총무는 "현지 소비자 반응을 점검하고 운송비를 지원하도록 경기도청을 설득하는 등 자기일처럼 챙겨준 무역관 덕분에 동남아지역에 처음으로 우리 배를 선보일 수 있었다"며 "KOTRA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역을 잘 모르는 농민들이 배를 수출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시작한 KOTRA의 지사화 사업이 시행 3년 만에 중소기업 수출의 첨병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말 현재 1천4백58개사의 해외지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4천4백78건의 계약을 성공시켜 3억7천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지역에 따라 연간 1백50만~2백5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데도 현재 1만여개의 중소기업이 지사화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지사화사업 담당자인 KOTRA 이원장 과장은 "지사화 계약을 한 후 6개월 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수수료 절반을 돌려주는데도 해지하는 경우는 1%가 안 된다"며 "해외 바이어와 안정적인 거래 관계를 구축했거나 지사화 후 3년이 지나면 강제로 졸업을 시키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사화 사업이 성공한 것은 전세계 98개국에 퍼져 있는 KOTRA 해외무역관의 폭넓은 정보력에 풍부한 수출관련 노하우를 접목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부터 바이어 선정, 샘플 제공, 주문 계약, 선적 및 통관을 거쳐 클레임 해결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해 해외 사정에 어두운 중소기업도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다. 지사화 사업 실적이 근무 평가에 반영되자 KOTRA의 담당 직원들은 발벗고 나서고 있다.

밴쿠버 무역관을 통해 농산물을 캐나다에 수출한 정안농산은 지난해 운송과정에서 밤에 문제가 생겨 수입업체로부터 클레임을 당했다. 정안물산의 연락을 받은 무역관의 한 담당자는 물론 무역관장이 직접 수입상의 물품 보관 창고를 방문하고 사장과 면담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이후 세차례에 걸쳐 수입상을 방문해 품질검사자.구매담당자 등과 피해 정도를 확인한 끝에 원만하게 타결할 수 있었다.

수입상은 정안농산과 무역관의 비상대처 시스템에 놀라움을 표했고, 이로인해 신뢰가 두터워지는 계기가 됐다.

1962년 '수출 입국'을 내걸고 설립된 KOTRA는 과거에 비해 위상이 낮아졌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영 혁신을 통해 중소기업 지원 등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전세계 무역관을 아우르는 전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본사 직원을 현장에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변신 노력을 보여왔다. 기획예산처가 평가한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에서 2000년에 7위를, 2001년 4위를 차지했던 KOTRA는 지난해 2위로 올라섰다.

KOTRA 오영교 사장은 "일본.타이완.호주 등 외국 무역진흥기관들이 KOTRA 지사화 사업을 벤치마킹할 정도"라며 "앞으로 지역별.국가별 전문가를 양성해 국내 중소기업의 심부름꾼이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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