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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철쭉속에 우정다진 산악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리산 철쭉제가 열린 지난 2,3일 세석고원은 등산객의 원색의 옷차림, 야영텐트와 연분홍의 철쭉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화려한 카드섹션을 연상케했다.
군락을 이룬 철쭉들은 아침햇살을 받아 밤새 머금고 있던 이슬로 맑은 물방울을 만들어 떨어뜨렸다. 낭군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세석의 철쭉은 청순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낼 수 있는 철쭉제를 몹시 기다린 것 같았다.
세석산장 건너편 기슭에 군락을 이룬 철쭉밭은 마치 연분홍 카피트를 깔아놓은것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철쭉을 보기 위해 모여든 등산객들은 야영준비를 제쳐두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히려 기념촬영에 바쁘다.
해마다 지리산철쭉이 절정을 이루는 날짜에 맞추어 진주산악회(회장 이장환) 가 주최하는 이곳 철쭉제는 올해로 열세번째.
너무 많은 산악인이 참가해 자연을 훼손할까봐 해마다 홍보를 억제해오고 있다. 그렇지만 올해도 세석고원에서 야영을 한 사람은 5백명을 넘었다.
철쭉제는 세석고원에서 산악행사를 하고 다음날 철쭉을 따라 장터목 천왕봉(1천9백15m)에 오르는 것이 주된 코스.
올 철쭉제도 지금까지와 같은 코스를 택했지만「자연보호」켐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이 특색.
앞으로의 철쭉제도 자연보호를 생활화하는 산악계몽 활동에 역점을 두겠다는 주최측의 설명을 들으니 철쭉의 훼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진주산악회는 철쭉제 발대식에서 참가자에게 비닐봉지를 나누어주면서 자신의 쓰레기는 물론 주위에 보이는 쓰레기도 모두 주워담아 하산하도록 유도했다.
세석고원 야영장에서도 안내방송을 통해「주의를 깨끗이 하자」는 켐페인을 벌였다.
이번 철쭉제의 하이라이트인 산신제·미스철쭉선발대회가 열린것은 2일하오4시부터. 세석고원 임시야영장에 산악인들이 모여들자 주최측은 산행의 안전을 비는 산신제를 시작했다.
미스철쭉선발대회에는 8명의 산아가씨들이 소속산악회를 대표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만큼 열기를 띠었지만 산행태도·등산장비준비·산악교양등에 비중을 두어 경남 산악연맹소속 문향란양(22)이 영애를 안았다. 모든행사가 끝나고 주위가 어두워진 시간에도 백여명의 사람들은 캠프파이어를 즐겼던 곳에서 떠날줄 모른다. 주최측이 마련해준 술과 안주로 우정어린 정담을 나누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건만 어찌 그렇게도 다정한지-. 주위의 철쭉들도 시샘하는것 같았다.
쌀쌀한 날씨속에서 철쭉의 밤을 지낸 참가자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정상정복에 나섰다. 중산리까지는 19㎞정도를 가야하기때문. 주의를 깨끗이 치운 참가자들은 속속 천왕봉으로 향했다.
세석의 철쭉과 아쉬운 작별을 나눈 참가자들이 도중에 함께모여 쉰곳은 장터목산장. 경남과 전남의 경계로 골짜기에 올라오는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장터목산장 아래에있는 샘에는 등산객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가 쌓여 파리가 끓고 있었다. 천왕봉에 오르는걸 포기한 사람들은 여기서 곧장 중산리로 내려가고 천왕봉으로가는 사람들만 수통에 물을 채웠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는 샘이 없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니 온 천하가 발 아래내려다 보인다.
좁은 천왕봉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몇몇 사람들은 정상 바위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꼭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건지.
천왕봉에서 법계사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좁은 길에서 마주친다. 서로 길을 양보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마주칠때마다『힘들지예』하는 산아가씨의 인사에 목례로 대답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중산리까지의 계곡은 골이 무척 깊다.
중산리 다리밑 계곡에서 비로소 세수를 했다. 차디찬 물이 정수리에 닿자 온몸이 오싹해진다.
지리산을 여름산으로 꼽는 이유를 이제야 알것같다. 지리산 계곡은 어디든지 여름철 피서지로 어울린다는 생각이든다.
중산리에서 다시 철쭉제 참가자들과 함께 주위를 깨끗이 하고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들에서 모내기하는 농부들의 바쁜 손놀림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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