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냈으면 밥 먹지마" 충암고 징계 … 고교들 급식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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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급식비를 미납한 학생에게 납부를 독촉한 서울 충암고에 대해 관련자를 징계하라고 27일 권고했다. 이 학교에선 일부 학생들이 이달 초 “학교 관계자가 ‘내일부터 오지 마라’ ‘네가 먹는 밥이 다른 학생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이라고 하는 등 학생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발언자로 지목된 교직원은 “급식비를 내라고 한 적은 있으나 인권침해적 발언은 한 적 없다”고 맞섰다. 그러자 시교육청은 현장 조사를 실시해 “차별·모욕적인 발언을 한 사람을 밝히지 못했으나 학교가 학생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형태로 미납을 알리는 등 학생 인권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이 학교에 대해 관련자 징계 외에 인권교육 실시 등도 권고했다.

 충암고의 경우 지난해 급식비 1600만원이 미납된 상태였다. 충암고처럼 1000만원 이상 미납된 서울시내 고교는 현재 총 8곳이다. 이들 학교 대부분은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있다. 또한 500만원 이상 미납된 고교는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서울시내 271곳 중 60곳(22.1%)으로 집계됐다. 서울 에선 고교 무상급식은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한부모가정, 가계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하 가정은 급식비를 지원받는다. 급식비를 지원받는 최저생계비 이하 기준은 서울이 울산(350%)·대구(260%)·부산(200%), 광주·대전(150%)에 비해 낮다.

 서울 지역 고교가 급식 미납으로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급식비 지원 대상이 아닌 학생들이 미납을 하는 데 있다. 학교 역시 충암고 같은 독촉을 할 수도 없다. 지난해말까지 1200여만원이 미납된 은평구 B고 행정실장은 “독촉장도 보내고, 직원들이 부모에게 전화도 하지만 ‘형편이 힘들다’고만 답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시교육청은 2000년 이후 급식비 미납이 발생하더라도 학교가 학생 본인에게 미납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며, 미납했다고 점심 제공을 중단하지 못하게 했다. 미납 학생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지 않도록 배려하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납부 여부를 알려주는 전자카드 리더기도 학교 식당에선 설치할 수 없다. 중랑구 E고 행정실장은 “급식비는 미납해도 졸업 후 1년이면 결손처리돼 받을 근거가 사라진다. 비교적 소액이라 소송도 어렵다”며 “결국 담당자가 열심히 부모를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급식비 미납은 급식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100만원을 걷지 못한 강동구 A고 행정실장은 “급식비는 일종의 수익자 부담경비로 걷는 만큼 그 범위 안에서 쓸 수 밖에 없다. 안 내는 학생이 늘면 꼬박꼬박 내는 애들의 급식 질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은 재정 압박이 심하고, 형편이 안 좋은 학생 수가 많아 급식비 지원 혜택을 확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천인성·박진호·신진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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