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화랑, 아직도 건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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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료입장객 2만2천명, 총 관객 2만8천 여명. 대회사상 개막일의 경우 최대의 성황이었다.
14회 대통령 컵 국제축구대회가 30일 서울운동장에서 화려하게 막을 열었다.
만장의 관중은 한국대표-서독 레버쿠젠의 경기가 끝나고 페루 알리안사-과테말라 국가대표의 두 번째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외국 팀끼리의 경기에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나타낸 것은 전례 없는 현상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날의 입장수입 4천여만원과 TV 중계료로써 총상금 6만달러를 거뜬히 확보, 회색이 만면했지만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연속 2게임이 팬들의 구미를 충족시켜준 것이었다.
기염을 토한 화랑. 『불과 한달 전 올림픽예선에서는 왜 이처럼 잘하지 못했을까?』관객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오랜 슬럼프에 허덕이던 이태호가 펄펄 날고, 싱가포르에서 주눅이 들었던 이길룡도 본래의 날카로운 칼날을 번득였다.
이들 링커진의 활기는 그대로 화랑의 맹위에 기폭제가 되었다.
3-2로 역전패, 유럽프로강호의 면모에 흙탕칠을 한 레버쿠젠의 「크라머」감독(58)은 어안이 벙벙한 채 쓴 입맛을 다셨다.
레버쿠젠은 차범근을 첨단에 내세우고 숙련된 개인기와 포메이션으로 초반의 경기를 주도했으나 기동력이 압권을 보인 화랑도 줄기차게 레버쿠젠의 문전을 위협, 숨돌릴 겨를이 없는 수준 급의 한판승부가 엮어졌다.
레버쿠젠은 화랑 GK 정기동을 기습, 기선을 제압했으나 (전반38분 ⑦빈클호퍼) 실점한지 불과 1분 후 이태호가 최순호의 헤딩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후 멋지게 꺾어 찬 것이 골인, 드러매틱한 골의 경쟁을 펼쳤다.
후반36분에도 똑같은 양상. 레버쿠젠의 LK 「훼르스트」가 기습중거리 슛으로 다시 앞장을 서자 화랑은 기다렸다는 듯이 역시 1분후 도깨비 같은 중앙돌파를 펼쳐 변병주가 두번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극적 승부의 하이라이트는 경기종료 3분전. 배후로부터 기습적인 속사 패스를 받은 이태호가 단독 질주, 수비2명의 견제속에 통렬한 러닝 슛을 터뜨려 역전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날 준족의 차범근은 대 스타다운 위력을 발휘, 감탄과 갈채를 모았으나 전반 종료직전 무릎에 이상이 생겨 후반엔 결장. 레버쿠젠의 위축에 요인이 되었다.
한편 중남미축구를 시범하듯 페루와 과테말라는 세밀한 개인기의 대결속에 시종 불꽃튀는 공방을 벌였으나 득점 없이 비겼다.

<배운다는 자세로 경기>
▲박종환 화랑 감독=기대보다 화랑은 후반에 좋은 콤비네이션을 보여줬다. 우리선수들의 용기가 되살아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레버쿠젠은 모든 점이 화랑보다 우위이나 공격주축인 차범근이 빠짐으로써 타격을 입었고 원정의 피로가 안 풀려 본래의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매 게임최선을 다하고 배운다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구장상태 나빠 부담>
▲「크라머」레버쿠젠 감독=서울운동장의 잔디상태가 매우 나쁘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 잔디의 보식이 거칠어 선수들은 발목부상의 위험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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