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기구 논의→여론 수렴→특위 관철’이 현실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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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10면

50여 개 공무원단체와 교원단체는 25일 서울광장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5월 1일 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의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

헛바퀴 도는 공무원연금 개혁

지난 24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비장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특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개혁안 마련 시한(5월 2일)을 지키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3월 17일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 회동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시한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무책임한 말 바꾸기는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남미 순방에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독대하면서 “(4월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관철시켜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야당은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서도 애매한 입장이다.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정부가 공적연금 강화에 대한 목표치와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실무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단체들의 주장과 똑같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투 트랙 방식으로 특위(여야)-실무기구(학자 및 공무원)에서 병렬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실무기구는 지난 24일 마지막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다가 공무원단체가 24~25일 민주노총 파업에 참가하면서 불발됐다. 26일까지 물밑 접촉을 이어가기로 했지만 접점을 찾기는 여전히 힘든 상황이다.

“더 내겠다” vs “덜 받아야 개혁”
공무원연금 개혁의 핵심은 저부담-고수익 구조의 틀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보다 내는 돈을 올리고 지급 연금액은 깎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누적 국가부채 1211조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42조원이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을 위한 충당부채로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 8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일반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과 형평성 문제도 있다. 생애 평균 소득과 연금액 비율을 따지는 소득대체율(30년 기준)만 봐도 공무원연금이 57%인데 국민연금은 30%로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월 100만원을 받는 공무원은 연금으로 57만원을 받고 일반 근로자는 30만원을 받는 것이다.

지난 20일 실무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단체가 내놓은 개혁안은 셀프 개혁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안은 모든 공무원이 보수의 8.5%를 내고 정부가 11.5%를 부담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정부와 공무원이 보수의 7%씩을 똑같이 분담해 내고 있다. 한국교총안은 보수에 따라 부담률을 차등화했다. 전체 공무원 평균 소득(월 447만원) 이상이면 보험료를 공무원과 정부가 10%씩, 평균 소득 미만이면 공무원이 8~9%, 정부가 11~12%를 내자는 것이다.

모든 사회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일대일 매칭 방식으로 돼 있다. 실무기구 공동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금융보험학) 교수는 “국민연금은 노사가 균등하게 부담하는데 공무원연금만 사용자(정부)가 추가로 부담하는 것은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무원단체는 보험료를 올리니 더 내는 방안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보험료는 조금 더 내고 연금은 그대로 받겠다’는 내용이어서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가령 300만원을 받는 공무원이 30년 재직할 경우 현행 제도로는 월 21만원(7%)을 내고 퇴직 후 매달 171만원을 받는다. 교총과 공노총안에 따르면 각각 월 24만~30만원의 보험료를 내게 된다. 지금보다 보험료는 3만~7만원만 더 내고 받는 연금액은 현재와 같다. 정부가 타협안으로 제시한 김용하 교수안(148만5000원)이나 새누리당안(112만5000원)에 비해 22만5000~58만5000원을 더 받는다.

재정절감 면에도 새누리당·김용하 교수안은 2085년까지 258조~394조원의 효과가 나는 데 반해 공무원단체안은 190조원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은 “연금 개혁의 성패는 단기 적자 해소가 아닌 장기적 부담 완화”라면서 “기여율만 올리고 지급률(연금액)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개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볼모로 잡은 공무원들
공무원연금 개혁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공무원단체와 야당이 공적연금 강화를 선결 조건으로 고집하고 있어서다. 실무기구는 지난 21일 발표한 합의문(안)에서 “공적연금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가 합의되고 법제화되는 시점에 맞추어 실무기구에서 합의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법안을 동시에 처리한다”고 적었다.

공적연금은 국민연금을 말한다. 국민연금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기까지 공무원연금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부 단체는 정부에 공적연금 강화 방안의 상세한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국민연금 강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모두 공적연금 틀 안에 넣어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포괄적인 논의를 진행하자는 것이다. 야당 추천으로 실무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김연명 중앙대(사회복지학) 교수는 “공무원연금단체에서 연금 개혁을 수용할 수 있는 최대 명분이 공적연금 제도에 대한 개혁”이라며 “보는 시각에 따라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연시키는 구실로 볼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명분이 생기면 양보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적연금 강화는 국민대타협기구(3월 29일 종료)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공무원단체의 요구는 합의 내용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새누리당 특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이 처리되면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기구를 만든다는 것이 합의사항”이라며 “공무원연금과 공적연금 법안을 동시에 처리한다는 것은 기존의 합의사항을 완전히 깨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김원식(경제학) 교수도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는 일체의 정치색을 배제하고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실무기구 참여자도 이해 당사자라 한계
주말을 반납한 채 실무기구가 활동을 이어간다지만 성과 없이 종료되면 결국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익명을 원한 연금 전문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는데, 느닷없이 국민연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실무기구 참여 인사도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처럼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타협안을 도출한다고 해도 일반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실무기구에서 논의된 안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국민 의견을 수렴해 특위가 총대를 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특위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보험료를 올리고 소득재분배 기능을 도입하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보수의 14%로 돼 있는 총기여율(공무원과 정부가 내는 보험료)을 20%까지 높이고 고위직일수록 상대적으로 덜 받는 구조로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연금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급률을 얼마로 할지, 공적연금 강화 방안 마련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지 등 갈 길이 멀다. 또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공무원연금보다 ‘성완종 리스트’를 핵심 이슈로 삼으려는 야당의 움직임도 변수다.

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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