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거법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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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원 선거법에 대한 개정협상이 곧 시작될 전망이다.
각 정당은 이에 맞춰 개정안을 마련했거나 구상 중에 있다. 「가장 당리당략적인 법률」 인 선거법은 그때 그때의 정치적 상황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게 마련이어서 정치상황이 바뀔 때마다 개정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지만 선거법 자체는 경쟁하는 정치세력간의 게임을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규율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가장 공정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선거법 협상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같은 선거법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당시의 정치세력간의 이해를 반영해야하는 현실적 필요성도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을 너무 무시하면 그 선거법이 오래 갈 수 없고 원칙을 등한히 해서는 공정성·합리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과거경험에 따르면 우리 선거법은 원칙보다는 현실에 치우쳐 협상되고 개정된 예가 많다.
유신선거법의 골간을 계승한 현행 선거법에도 그런 문제점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선거법 협상은 각 당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당리추구와 함께 보다 나은 선거법을 만든다는 자세로 임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각 당의 자세를 보면 당리적인 차원에 치우쳐 기본적인 문제는 협상테이블에 아예 올려놓지도 않거나 유리한 협상결과를 따내는 카드로만 이용하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있다.
예컨대 현행 선거법은 다당제를 표방하면서도 여야 공존체제의 편법으로 72년 유신 때 채택된 1구 2인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부터 나눠먹기 식 선거구제라고 비판을 받았었지만 민정·민한당은 자당에 유리한 이 선거구제에는 애당초 눈을 감아버리자는 자세다. 민한당의 민주제도개선 특위가 지난해 1구 1인의 소선거구제를 발표했다가 『눈치도 없이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당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이를 아예 없는 것으로 덮어버린 것이 좋은 예.
국민당이 제3당의 명맥유지를 위해 1구 다인제를 제안해 놓고 있으나 민정당측은 1구 다인 선출대상 선거구가 주로 대도시이기 때문에 국민당보다는 오히려 민한당에 유리해지고 여당은 복수공천 등 골치 아픈 문제만 생기게 된다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의 지역구는 인구의 불균형이 극심하다. 서울의 동대문, 마포-용산, 서대문-은평, 부산의 동래, 대구의 중-서구 등은 인구가 80만명 이상이다.
이에 비해 속초-양구-인제-고성이나 진안-여주-장수는 인구가 20만명도 채 안돼 인구편차는 4대 1을 넘고 있다. 이는 1인 1표의 가치를 가급적 같게 해야 한다는 평등원칙(헌법 10조·77조)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각 당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구편차가 40%를 넘으면 대체로 위헌으로 간주되고 서독은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편차가 33.3%를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당 측은 인구가 많은 선거구를 조정할 경우 국회의원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고 분구 대상인 대도시에서 선거구가 증설되면 여당에 유리할 게 없다는 당리차원의 이유로 부정적 입장인데 비해 야당 역시 늘어난 정치적 수요의 해소란 현실적 필요에서 일부 증구를 주장하는 정도다.
전국구의 경우도 그 수와 배분방식에 모두 문제가 있다.
직능대표라는 차원에서보다는 명예직이나 이권 수여적 방식에 의해 전국구 의원이 선정된다면 이는 국민의 대표성이란 관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전국구 의원수가 지역구 의원수의 절반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을만 하다.
제1당이 무조건 3분의 2를 차지하게 돼있는 전국구 의원 배분방식은 헌법 77조 3항에 규정된 비례의 개념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민정당 측은 92개 지역구에서 1명씩 모두 당선되고 전국구 의석 3분의 2를 차지해도 전체의석(2백 76명)의 55.4%밖에 안되므로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례대표의 본뜻과는 맥락이 닿지 않는 정치적 논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야당 측은 「여당 측이 절대로 들어줄 리가 없다」고 미리 체념해버리고 여당 공격의 선전용으로만 떠들 뿐 제대로 문제를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선거법은 엄격한 선거공영제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운동 방법은 합동연설회·선거공보·벽보·현수막 등 4가지밖에 없다. 그 밖의 모든 방법의 선거운동은 모두 불법으로 돼있는데 이 4가지 방법만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가 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당활동으로서 단합대회는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정당 후보자의 변칙적인 탈법 선거운동의 길은 터놓고 있다.
선거운동원도 면 단위(구는 동 단위) 1명씩만 두게되어 있고 차량은 2대를 넘지 못하며 선거사무장이 선거법을 위반해 형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가 되도록 하고 있다. 선거법이 입후보자에게 선거운동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기보다는 사실상 선거운동을 거의 할 수 없도록 지나치게 규제함으로써 현실적으로 탈법·위법사례가 많이 발생하여 법 효력에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선거관리에 있어서 선거인 명부 열람기간이 짧으며(2일) 투·개표 참관인이 8명으로 제한돼 4명씩 교대 근무케 하는 것도 투·개표의 공정성 유지와 후보자의 내 표 지키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 야당 측 주장이다.
현재 여야의 선거법 협상은 근본적인 문제점에 정공법으로 도전하기보다는 주로 선거운동과 선거관리 쪽에 쓸려있는 것 같다.
그것은 제도권내에 안주하는 기존 정당의 한계일는지도 모르겠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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