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방소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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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년만에 소련을 방문중인 김일성은 「체르넨코」와 세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진 뒤 10일간의 공식·비공식 일정을 마치고 26일 폴란드로 떠났다.
수상인 강성산과 국방상 오진우 등의 수행원 구성이 말해주듯이 김일성의 방소는 정치·경제·군사 전반에 걸친 소련의 지원획득에 있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김일성-「체르넨코」 회담의 합의내용 중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①동북아에서의 상호 군사력 증강 ②외세의 개입 없는 한반도의 민주적·평화적인 통일 ③「체르넨코」의 북한 방문 등이다.
김일성과 「체르넨코」는 「미·일의 군국주의위협」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이에 공동으로 대항키 위해 동북아지역에서의 상호 군사력 증강에 합의했다.
그 밖의 위협 요인으로 김일성은 한국, 「체르넨코」는 중공을 거론했으나 끝내 견해가 일치되지 못해 미·일만 지적한 것 같다.
「상호 군사력 증강」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소련은 소련의 극동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도 새로운 무기와 장비를 제공할 것 같다.
「레이건」 「나까소네」등 미·일의 보수강경파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활발해진 미·일·중공 협력관계의 발전이 소련으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중공군에 새로운 장비와 기술 및 재래식 무기의 지원까지 검토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소련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군사원조는 북한의 노후장비 교체와 신예전투기가 될 것 같다.
군사장비는 수명기간이 대체로 10년 전후다. 그러나 북한의 현존 장비의 대부분은 그 기간을 훨씬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소련은 중·소 사이에서 기회주의적인 실리외교만을 추구하는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인방」으로 평가, 친소 아랍국가들에까지 주고 있는 미그-23 전폭기를 북한에는 주지 않고 있었다.
지금 북한의 최신예 전투기는 우리공군의 F-86이나 F-5 수준의 미그-21이다. 북한은 우리가 보유하는 팬텀이나 주한미군이 보유하는 F-16, A-10등 신예기가 없기 때문에 양적으로는 우리 군사력의 2배 이지만 질적으로는 열세에 있다.
소련이 거부하고 있는 한반도문제에서의 외세에는 중공과 미국을 다같이 포함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중공의 중재나 미국의 4자 회담은 물론 북한의 3자 회담마저 거부한다는 논리로 귀착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과 중공이 개입된 그 동안의 한반도 논의에서 소외되어온 소련으로서는 한국의 남북한 양자회담이나 소련까지 포함한 5자 또는 6자 회담을 의중에 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체르넨코」가 굳이 평화통일을 강조한 것은 중공과 마찬가지로 소련도 이 지역에서의 전쟁 재발이나 무력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도 대남 무력통일을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는 김일성의 군사노선에 대한 견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체르넨코」가 평양을 방문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이변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스탈린」이나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모택동 등 양대 공산대국의 최고 절대권자가 북한을 방문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방소로 북경-평양의 밀착관계로 특징지어졌던 북방 3각 관계의 거리가 균등한 방향으로 재조정되면서 이 지역에서 소외됐던 소련의 발언권은 다소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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