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여권 3개 들고나와 "미국 영주권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나흘간 이어진 ‘마라톤’ 국민참여재판의 결론은 배심원 전원일치의 유죄 평결이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참여재판을 신청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지난 20일부터 4일 연속으로 진행된 참여재판은 매번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상대 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선 21일의 경우 밤 12시가 다 돼서야 마무리됐다. 23일 선고공판도 쉽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심리에 이어 오후 5시 넘어 조 교육감의 최후진술로 마무리됐다. 이어진 평의는 예정보다 1시간 반 이상 지연됐다.

 지친 얼굴로 들어선 재판부는 “배심원으로부터 2개의 봉투를 받았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배심원 7명 중 6명은 조 교육감에 대해 벌금 500만원, 1명은 300만원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히자 방청석은 잠시 술렁였다. 심 부장판사가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다”는 주문을 읽는 순간 “이게 말이 되느냐”는 항의가 터져나왔다.

 재판부와 배심원들은 “고 변호사의 영주권 취득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조 교육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교육감이 의혹을 인지하게 된 경위 ▶학력 ▶허위사실의 공표 시점 ▶객관적으로 입증된 선거에서의 파급효과 등을 살펴보면 이를 검증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자회견 이후 진위 여부를 확인하거나 이를 지시하지 않았다”며 “의혹을 제기할 때 상대방이 있는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고승덕 변호사는 자신이 사용해 온 여권 3개를 들고 나와 여권에 찍힌 미국 비자를 공개하며 “영주권이 있으면 법적으로 비자가 나오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과거 자서전에서도 내가 미국에서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며 “(미국 영주권 보유 주장은) 선거 막판에 의혹을 제기해 판세를 바꾸려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미국 정부의 외교 문서 등에 따라 실제로 영주권을 취득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최후 진술에서 “재판을 준비하면서 내 머리와 마음의 진실을 100% 꺼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판과정에서 고 변호사가 의혹 제기를 제 둘째 아들의 편지와 (고 변호사의) 따님 편지를 대비시키기 위한 선거 전략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모든 일이 끝나면 이런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선고공판이 끝난 뒤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바로잡히기를 소망했는데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왔다”며 “곧바로 항소해 2심에서 무죄가 완벽하게 입증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필귀정”이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선거 문화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선거를 하게 되더라도 다시 교육감 선거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전영선·윤석만 기자 az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