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명분만 좇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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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기반
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

지난 1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우선 할당방법이 문제가 된다. 현재의 할당방식은 경기가 좋은 때에는 배출권 초과수요를,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초과공급을 야기한다. 따라서 배출권 가격은 경기상황에 따라 매우 심한 등락을 보이게 된다. 온실가스는 다른 대기오염물질과 달리 현 기술수준에서 투자를 늘려도 감축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은 생산량을 줄이는 방법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배출권가격이 경기에 따라 급등락할 가능성이 크므로 경기변동이나 생산 활동을 고려한 할당방안이나 배출권 최고 가격제와 같은 시장유연화 조치 도입이 필요하다.

 간접배출 규제도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배출권거래제에 따르면 전력이나 열을 사용하는 업체는 사용한 만큼의 전력과 열을 생산할 때 발생한 온실가스에 대해서도 감축해야할 의무를 지게 된다.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는 산업체 입장에서 이는 이중규제인 셈이다. 이러한 간접배출 규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사례를 찾을 수 없다.

 다음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재검토 문제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따라 BAU를 재산정한 결과, 기존의 전망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초에는 2010년 온실가스 배출이 2005년 배출량보다 5000만t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는 1억t이나 증가했다. 예상보다 2배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그럼에도 감축 로드맵에서는 2020년의 BAU를 동일하게 유지하였다. 더구나 배출권거래제 할당 기준이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근거한다는 점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번 배출권거래제 제1기(2015~2017년) 할당량도 이 로드맵에 따라 설정되었다. 비록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할당을 일부 완화하였지만, 제2기(2018~2020년)의 할당이 기존 로드맵을 따라간다면 산업계는 상당한 양의 감축부담을 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BAU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배출권 할당과정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재검토하자는 의견에 대해 정부는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눈을 돌려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자. 일본·러시아·캐나다 등이 자국이 천명한 감축 의무를 준수하기를 거부하였고, 호주도 자국의 산업경쟁력 저하를 우려하여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철회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국제적 추세와는 달리 너무 명분에 얽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업체의 요구를 무시한 일방적인 할당은 기업체의 경제활동을 제약한다. 더 나아가 국내 투자가 줄어들고 일부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 해외로 나가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 우려된다. 따라서 앞으로 보다 현실적인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을 재검토해 경제 상황에 따른 유연한 할당방식을 도입하고, 일방적인 규제 중심에서 온실가스감축 기술개발 지원 등 인센티브 제도 도입으로의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기반 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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