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Talk Talk] 내 정보엔 인권, 남의 정보는 알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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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전국 100만 공무원과 30만 공기업 직원께 묻습니다. 월급·이름·소속이 인터넷에 공개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말도 안 된다고요? 미국에선 이미 실행됐습니다.

텍사스의 인터넷 언론사 텍사스트리뷴(TT) 홈페이지에는 텍사스 주 공공부문 직원 27만3027명의 임금이 실명 공개돼 있습니다. (salaries.texastribune.org) 검색도 됩니다. TT는 텍사스 감옥 수감자 이름과 죄명, 공립학교 학업성취도와 대학 진학률도 상시 공개합니다. 창간 6년차인 TT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텍사스 오스틴 TT 편집국에서 존 조던 편집·행정국장을 만났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국내 7개 언론사 기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

 정보 공개에 따른 문제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한국 같으면 항의와 소송에 언론사 업무가 마비될 텐데요. 그런데 조던 국장은 “텍사스 주 법에 따라 정부는 언론의 정보 공개 청구에 10일 내에 응해야 한다”고만 했습니다. 공무원들의 항의는 없었냐 묻자 “몇 명 있긴 했는데 세금 쓰는 공공 영역이니 이해하라 했다”네요. 수감자 가족 반응은 이랬답니다. “소식 끊겼던 우리 형이 어딨는지 알았다고 고맙다던데요.”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2010년 조전혁 전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교조와 교총 가입 교사들의 실명을 공개했었죠. 전교조는 법원에 공개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조 전 의원은 공개를 강행했습니다. 현직 의원이 법원 결정을 어긴 것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교사의 교원단체 가입 여부가 학생의 교육권과 학부모의 알 권리에 속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4년 간의 법정공방 끝에 지난해 대법원은 조 전 의원이 전교조 교사들에게 1인당 10만원씩 총 3억4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생활 비밀과 노조 단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미국 텍사스 법은 시민의 알 권리를, 우리 법은 사생활 보호를 우선한 것 같습니다. 문화 차이겠지요. 그 사회에서 정보 공개에 따른 개인의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말입니다. 예를 들어 수감자 실명을 공개한다면 한국에서 그 가족들의 사회생활에 타격이 크겠지요.

이거 하난 부럽습니다. ‘세금 쓰이는 곳=공공’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분명한 거요. 한국에서는 그냥 좀 유명하면 ‘공인’이라며 카카오톡 사적 대화까지 공개되기도 하죠. 과연 무엇이 ‘공공 정보’인지 진지한 논의가 있었던가요. 뚜렷한 기준 없이 내 정보에는 ‘인권’을, 남의 정보에는 ‘알 권리’를 들이대는 풍경이 낯익어서 생각해 봤습니다.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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