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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서 5천8백불 주워쓰다 간첩. 살인범으로 몰려 곤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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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세상에 역시 꽁짜가 없더군요. 분수대로 살아야 하는 건데 공짜 한번 밝혔다가 하늘 노란꼴 당했습니다』
서울 난지도 쓰레기 처리장에 생활의 뿌리를 박고 사는 재건대원 이상선씨(43·경기도성남시신여 2동 283의82).
쓰레기더미속에서 주인모를 거액의 달러를 횡재,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쓰다가 간첩으로 오인받고 롯데호텔 미국여인 살해용의자로 몰려 혼쭐이 난 「억세게 재수없는 사나이」다. 배움이라곤 국민학교 졸업뿐. 폐품수집 13년동안 이씨에게 처음으로 행운아닌 행운이 닥친것은 지난 2월16일 상오 2시. 부인과 동료 재건대원등 7, 8명이 모닥불빛속에 작업을 할 때였다.
열심히 쓰레기더미를 뒤질 때 이상한 무늬의 종이2장이 눈에 띄었다. 문제의 l백달러짜리 였다.
이씨는 물론 어느 누구도 그것이 미국돈 이란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날 이씨가 캐낸 달려는 모두 1백달러짜리 58장 5천8백달러였다.
날이 새자 상오 9시쯤 폐품수집상이 나타났다. 이씨는 한장을 꺼내보이며 『이게 무엇이냐』고 물있다. 그 폐품수집상은 5만원을 줄테니 팔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니은」(영어의 알파베트 「L」을 이씨는 이렇게 불렀다)가 들어 있는게 미국돈인 줄 알았습니다』 당시 기준환율은 1달러당 7백83원96전. 줄잡아 2만원이상을 손해보는 줄도 모르고 이씨는 폐품수집상에게 2백42만5천원을 받고 3천7백달러를 바꾸었다.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자기집에 세들어 사는 김모씨(25·운전사)의 소개로 나머지 20장을 평택에 가서 1백44만원에 팔았다. 이씨 평생 처음 만져보는 엄청난 돈이었다.
『죄가 되는줄 몰랐지요. 썩은 냄새가 물씬물씬 나는 데서 버려진 것 주운 것 뿐인데. 내가 못찾았으면 영원히 땅속에 묻혀버릴 물건이니까요』 이씨는 달러를 판돈으로 1남 2녀의 학비로 진빚 l백만원을 갚았다. 아이들이 조르던 컬러TV를 사고 부인에겐 전기세탁기를 사주었으며 장모 회갑때는 1백만원을 내놔 사위노룻 한번 단단히 했다. 재건대원들의 동향모임인 호남 향우회 (이씨의 고향은 전북 김제군 ) 건립기금으로 20만원을 내놓았고 동료재건대원들을 모아 40만원어치의 술자리를 베풀었다.
그러나 없던 사람이 갑자기 물쓰둣 돈을 쓰는데 주위에서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다.
한달쯤 지나 돈이 바닥이 날즈음인 3월25일 하오7시쯤 폐품을 고르고 있을때 서울 성동경찰서 형사대가 들이 닥쳤다.
이씨는 어느 외진 파출소 2층으로 끌려가 모진 닥달을 받았다. 롯데호텔 미국여인 살인범으로 추궁도 받았고 『평양엔 몇번 다녀왔느냐』고 조사를 받았다.
이틀 뒤인 27일 이씨는 서울지검 공안부에 송치되어 기소된 뒤 서울형사 지법에서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죄명은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점유이탈물 횡령죄 권씨를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엄청난 죄명이나 전과사실 보다도 3백91만5천원이란 추징금.
『복권 당첨됐다고 잔치벌이다 빚진다더니. 제가 꼭 그꼴이 되었습니다』 부부가 하루종일 쓰레기더미를 뒤져야겨우 8천∼9천원을 버는 이씨로선 추징금 물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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