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 결핍」과 해묵은 「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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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홍콩=연합】홍콩에서 간행되는 시사주간지 파이스턴 이커노믹 리뷰(PEDER)지는 17일자 호에서 한국학원사태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분석했다. 이주간지는 한국에 있어서 학생시위가 만성화 되 온 것은 학생들이 그들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느끼는 『자기만족의 결핍』과 전통적으로 학문기관의 정치개입을 용인해 온 일반적 분위기에 의해 집요하게 고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다음은 『한국학생들의 행동주의는 해묵은 학원전통』이라는 제목으로 된 이 기사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의 사회·문화적 환경에는 ▲학문에 대한 전통적 숭상 ▲발전압력에 미흡한 교육제도 ▲학문적 도전 또는 학문적 실질의 결여 ▲급속한 경제변화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사회적 혼돈의 만연 ▲청년층의 욕구와 대학교육의 폭발적 성장에 부응 못하는 사회체제의 보수성 등 여러 측면이 감안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한국인들의 교육열이 높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많은 학생들은 대학 내에서 지적 관심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학문에 대한 뿌리깊은 존경심은 우후죽순 격으로 많은 사립대학을 낳게 했다. 이들 대학은 거의 무비판적인 교육시간에 편승, 확장일로를 걸어왔으나 질적 수준은 각양각색이다.
더구나 권위주의적 가정환경은 다른 나라의 학생들이 누리는 자기책임이나 자율의 몇 분의 1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성적욕구의 충족기회도 별로 없다.
이같은 자기만족의 결핍은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영웅적인 행동을 시도하게끔 충동한다.
한국 학생들의 불만과 또 그것을 표출시키는 그들의 방식은 이슈자체의 비중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문화적 아노미 현상에서만 오는 것도, 또한 보편적인 젊은 혈기에서만 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학생이라면 정치적 항의에 가담해야한다는 전통적 의식에 젖어있다. 학문기관이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교정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조선시대에 확립된 전통의 하나였으며 이는 하나의 도덕적 의무감으로 발전되어 국민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바로 그와 같은 전통적 기대감이 학생들의 행동동기를 고무시키는 요인이 된다.
곧 국민의 상당수가 학생시위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학생시위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대성은 피상적으로는 학생측 요구의 정당성과 이에 대한 일반의 지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사실에 있어서 국민들은 비록 학생들의 요구에 수긍할 점이 있다고 보면서도 그들의 요구 방식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의 학생시위는 위와 같은 특수한 문화적 배경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정치적 안정과 자유라는 서로 대립되는 이념사이의 조화를 찾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닥치는 복잡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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